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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06. 2023

나는 쓰고 싶다

가끔 '이 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을 찍고 싶다,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 소리를 녹음해 놓고 싶다 그런 것을 넘어서, 이 순간 나의 마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쁜 광경,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서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을 낱낱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순간의 많은 부분은 가족과 관계한다. 최근 쓰고 싶었던 순간은 내 아버지와 함께 했던 비 오는 날의 산책,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나눴던 시시콜콜한 잡담과 쇼핑의 순간이었다. 50년째 아침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하는 삶을 반복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그분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하루하루가 아까워 죽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기고 아이의 성장일기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남기나 보다.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서 들춰보지도 않는 것들이 내게는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치자면 쓰고 싶은 순간이 무궁무진하다. 곧 50을 맞이할, 이번 생에는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언니, 내 인생 최고의 친구 나의 남편, 점점 나와 자매가 되어 가는 내 엄마. 쓰고 보니 모두 내 가족들이다.  


내가 진짜로 알고 싶은 건 이모들의 속 깊은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는 너무나 막막하고 먹먹해서, 이모들은 말하다가도 북받쳐 웃어버리거나 울어버리곤 했다.
이모들은 글을 쓰지 않으니까, 이모들조차 자꾸 제 이야기를 까먹어버리고 만다.
사는 게 너무 바쁘고 고생스러워서 까먹고, 드물게 만날 때마다 옛날 얘기하다가 까먹고, 묻는 이 듣는 이 없으니 한 시절을 그냥 까무룩 까먹고, 이제는 늙어가느라고 깜빡깜빡 까먹어버린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 27쪽 중


깜빡깜빡 까먹고, 이제는 늙어가느라 까먹는다는 고수리 작가님의 말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육아일기도 성장일기도 꾸준히 남기지 못했던 내가, SNS에 주말 일상도 성실히 남기지 못하는 내가, 내 사람들에 대한 글을 이제와 쓰려고 하니 많은 부분 기억이 나질 않아서다. 만약 내가 아주 예전부터 무언갈 써서 남겼다면, 그 글들을 가끔 찾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지금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 사람들에 대한 본격 쓰기를 미루는 마음 중 하나는, 내가 너무 많이 모든 걸 이해해 버리는 결론에 이를까, 두려워서도 있다. 언니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면,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면 고마움이 팔 할이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는데, 그걸 쓰기 시작한다면 나는 그들을 또 다 이해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면서 쓰면서 나는 또 완벽한 그들의 편이 되어 버릴 거다. 서운했던 마음 그래서 슬펐던 마음은 작고 작아져 없어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진 않다. 과거의 나를 존중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게 다소 미숙했고 예쁘지 않았고 못났어도, 내가 나를 긍정하지 않는다면 난 뭐가 남을까.


희망과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글은 뭔가 논픽션이 아닌 것 같고, 질투가 나서 덮어버릴 때도 있고, 심심할 때도 있다. 아마 그건, 모든 독자가 같은 마음일 테지만. 나는 가끔 희망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커서, 절망하는 마음을 무시한다.


에세이 범람의 시대라고 한다. 특히 가족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는 정말 차고 넘친다고. 하지만 내가 에세이를 써서 누군가와 경쟁하려고 하는 게 아닌 다음에야, 다들 자신을 위해 쓰는 시대라면, 와. 정말 세상은 멋진 사람 투성이다. 글로서 누구를 공격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르포로 뭔갈 고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쓰면서 본인은 나아지고 누군가와 함께 공감하고 교감을 나누고자 쓰는 거라면. 이건 정말 너무 좋다.


그런데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 것은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는데 취미가 쓰기라고 말하는 건 조금은 부끄럽다. 수십 년 간 많은 책을 읽으며 읽어서 읽어서, 궁극적으로 뭔갈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쓰고 쓰다가 그래서 결국 뭐. 라는 생각은 간혹 든다. "책을 좋아해요."라는 말은 당당히 할 수 있는데 "쓰는 게 취미예요."라는 말은 좀.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쓰는 건 직업이 될 수 있지만 읽는 건 직업이 될 수 없고, 그래서 읽는 건 취미가 될 수 있지만 쓰는 건 취미가 될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오늘도, 당당하게 쓰자. 써...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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