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구가 나타났다. 언뜻 보면 이건 내 아이가 학습지 공부할 때 썼던, 그 세이펜이다. 내 아이는 그 기기로 중국어를 배웠는데, 텍스트에 기기를 가져다 대면 단어를 읽어줬다. 엄마, 아빠, 의자 등등. 단,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 펜은 해당 학습지만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책은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기기는 그와는 많이 다른 것이, 소리가 나지 않고 액정이 매우 크다. 눈여겨보니, 학생은 텍스트에 자꾸 그 도구를 가져다 댄다. 책에가져다 대면, 모든 한국어가 중국어로 변환돼 액정에 뜬다. 조금 굵은 펜 사이즈이고 액정에 두 세 문장 정도는 충분히 변환이 된다. 필통에 쏙 들어간다. 오, 정말 신박하다. 내가 기기에 관심을 보이니 학생은 여러 가지 기능을 보여줬는데, 이 기기 정말 신기하다. 모든 언어(모두는 아니겠지만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주요 언어)를 중국어로 변환해 줄 수 있고, 가격은 2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쯤 되니 학생들이 너도 나도 갖고 싶다며 몰려들었는데, 이 기기 또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많은 언어를 인식하지만, 출력은 중국어로만 된다. 학생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고, 흩어졌다. 하지만 많은 언어 변환기가 그렇듯이 번역은 완성도가 중요한데, 내가 중국어를 전혀 모르므로 신뢰도는 확인하지 못했다.
1세대 : 전자 사전
내가 처음 한국어 교사가 되었을 때, 수업에 들어가면 (보통 일본) 학생들이 정갈하게 전자 사전을 책상 위에 펴고 대기 중이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에도 영어 공부를 한다면서 그 전자사전을 샀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만 해도 어쨌든 사전 찾는 일들은 집에서 하거나 쉬는 시간에 하는 거지 실시간으로 수업 중에 사전을 찾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전자 사전 하나만으로도, 공부하기 참 편하겠다 싶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렇지, 저 조그만 전자 사전 안에 (당시 사전계의 양대 산맥을 차지했던) 영-한 에센스 사전이 통으로 들어있다는데, 저렇게 가볍다니.
2세대 : 스마트폰 사전
스마트폰이 흔해지고 와이파이가 보편화되면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사전과 카톡과 SNS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핸드폰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사전을 찾는다고 했고, "카톡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카톡으로 메시지 번역 기능을 사용 중이라고 했다. 어느 해엔가는 잠깐 수업 전에 A4박스 뚜껑에 스마트폰을 걷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수준은 정말 애교에 불과했다. 호모 모빌리쿠스 또는 호모 스마트쿠스 또는 호모 아딕투스의 극초기 시절이다.
3세대 : 구글 파파고
이제, 타이핑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찍으면 된다. 그냥 렌즈로 찍어서 내가 번역하고 싶은 부분을 손으로 쓱싹쓱싹 문지르면 된다. 뭐, 번역의 완성도야 매우 미진하지만 텍스트의 분위기를 파악하기에는 매우 유용하다. 와, 이제 진짜 이게 통제가 안 되는구나.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찍고 문지르고도 안 한다. 그냥 갖다가 대면 실시간으로 텍스트를 인식하고 반응해 다른 언어로 변환된다. 읽기 수업 시간에 수업을 정말 못 쫓아오는 학생들의 경우 일단 스케치하듯 그렇게 텍스트를 한번 리뷰하고, 그 후 혼자서 다시 읽는 것을 봤다. 과연 이것은 학습을 돕는 적절한 도구인가 아니면 방해물인가.
4세대 : 전자기기의 범람
이제 그 종류와 수를... 셀 수 조차 없다. 노트북과 패드는 기본, 바로 얼마 전에 서두에 쓴 쎄이펜 스타일의 번역기를 봤고, (전자 잉크 노트) 리마커블, 이북 리더기 등등. 이제는 교사가 주는 종이 학습지를 받자마자 PDF로 변환해 본인 기기에 담고, 종이는 다시 돌려주는 경우도 나왔다. 맞다. 종이가 아깝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전자기기의 치명적인 단점은, 창이 닫힌다는 것. 그리고 집중이 어렵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려면 창을 닫아야 한다. 활성화해 놨다가 필요시 다시 열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눈앞에 보이는 것을 위해 지나간 것은 비활성화되어야 한다. 안에 어딘가에 담겨 있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현재 수업 중인 창과, 필요 시 찾아서 함께 볼 창과, 반복해서 봐야할 또 다른 한 개의 창이 필요하다면... 도대체 몇 개의 모니터가 있어야 할까. 만약, 미션 임파서블처럼, 수많은 SF영화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허공을 터치해 10개가 넘는 창을 손가락으로 불러오고 동시에 보고 다 쓰면 없애고 그렇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냥 칠판 하나에, 종이 하나. 책 하나면 있다면 어떨까.
이북리더기를 참 좋아한다. 고속도로를 오래 달려야 할 때, 터널을 자꾸 지날 때, 조명에 관계없이 볼 수 있는 이북리더기가 참 유용하다. 밤에 잠이 들기 전에도 이북은, 두 손으로 책을 들고 넘기지 않아도 되고 가볍고 눈도 아프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명도 있고 너무나 좋다. 하지만 이북으로 책을 읽고부터 책 제목을 훑어보는 기쁨이 사라졌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면서, 가끔은 컨트롤 F를 눌러 찾을수 없어 답답해 하지만, 가나다 순으로 꽂아 둘 걸, 분야 별로 꽂아 둘 걸, 작가 별로 꽂아 둘 걸, 도대체 내가 언젠가 읽었던 그책은 어디에 있을까 답답해 하면서도. 그래도 종이책이 좋은 건 왤까.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자주 하는데, 이건 모두 그냥 내가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들인 걸로, 결론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