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우리 반에 타고난 재능꾼이 있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무엇보다 잘 웃는다. 재능꾼이 포함된 모둠은 항상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초급이어서 뭐 얼마나 대화가 가능하겠냐만은,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마음은 통하니까. 우리는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초급 한국어 학생들이니까.
재능꾼도 처음에는 좀 부끄러워했다. 한국어 성취도가 그리 우수하지는 못해서인지, 뭔가 질문하면 주저할 때도 있고 기대만큼 정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니 나에게 미안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그냥 웃기만 하더라도, 밝고 잘 웃고 잘 대답하는 학생은 반에서 소금 같은 존재다. 소금 같은, 게다가 재능 많은 재능꾼. 이번 학기는 이 학생 덕분에 수월하게 마음 편하게 수업할 수 있었다.
재능꾼도 어려운 문법을 배우는 날은 좀 숙연해진다. 그래도 정답률이 50%는 넘어야 자기도 할 맛이 나는데, 정말 어려운 문법을 만난 날에는 읽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왜 안 그럴까, 남의 나라 말은 언제 봐도 그냥 그림인 나는, 학생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어느 날, 유난히도 학생들이 지치고 힘들어하던 어느 날.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언제 쉬나 시계만 반복해서 보던 그런 어느 날이었다.
질문 있어요?
응? 교사는 난데, 저 질문을 누가. 저건 네 멘트인데. 내 껀데.
이해했어요? 잘했어요. (짝짝짝, 박수)
엇, 재능꾼이 내 성대모사를 하고 있다. 새롭게 발굴한 개인기인가. 난 정말, 허리를 꺾고 웃었다. 나는 재미있는 캐릭터의 선생님이 아니다. 그냥 모든 게 그냥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다. 성대모사라는 게 뭔가 특이점을 찾아 그걸 포인트 삼아 재미있게 따라 하는 건데, 나는 정말 그럴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 친구, 진짜 나랑 똑같다. 이럴 수가. 난 정말 동영상이 찍고 싶을 정도였다. 그 이후로도 종종, 그것 말고도 여러 개. 잊을만하면 재능꾼을 날 따라 해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괜찮아요?" "파이팅!" "안 돼요." 등등. 뉘앙스가 어쩜, 나랑 똑같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자주 하는 말은 뭐예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뭐라고 해요? " ~ (으)라고 했어요. ~지 말라고 했어요."로 써 보세요. 4명이 같이 이야기하고, 한 명이 써 보세요. 큰 색지와 사인펜을 주고, 모둠 활동을 시켰다. 뭐라고 쓸까... 어떤 다양한 말이 나올까... 기대하며 한동안 지켜보다가 모둠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난 정말 나에게 너무나 실망했다.
연습하라고 했어요. 공부하라고 했어요. 복습하라고 했어요. 숙제하라고 했어요. 영어로 말하지 마세요. 한국어로 이야기하세요 ....... 선생님 보라고 했어요.
그나마 "선생님 보라고 했어요."가 좀 다르게 들리지, 모두 공부하라는 얘기였다. 어학당이 입시학원도 아니고, 한국어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내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어쩌면 학생들을 나 편하게 통제하려던 내 욕심에, 지나치게 시험 과제 퀴즈 인터뷰의 중요성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 같이 읽고 마무리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여러분 미안해요, 선생님이 매일 공부 이야기만 했지요?". "한국 생활 즐겁게 하세요. 춘천에도 놀러 가고 서울 구경도 하고 한강 공원에 가서 치맥도 하세요. 이번 주말에는 공부하지 말고 즐겁게 신나게 노세요."
다 큰 성인 학습자들이 내 말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취미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나에게 카톡으로 "안냐세여" "슨셍님 느무 감사함니다."라고 쓴다고 해서, 뭐 그렇게 큰일이 나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