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는 막내 라인이 5명이었다. 스물, 스물 하나, 열아홉...... 막내 라인. 걸그룹 또는 보이그룹의 일원인 것처럼, 나는 그들을 막내 라인이라고 부른다. 우리 반의 막내 라인. 우리 반의 아이돌.
이번 학기 막내 라인은 실제로 한 학기 내내 아이돌 포스를 폴폴 풍겼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표정과 포즈가 시시각각 바뀐다. 바로 SNS에 올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매일의 패션 스타일도 매우 남다르다. 무심하게 입은 것 같지만, 얼핏 보면 걸그룹 음악 방송 출근룩이다.
한 학기, 10주. 항상 그렇듯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막내 라인은 눈물을 글썽인다. "선생님 보고 싶을 거예요." 나는 그들을 한 명씩 안아주었다. 꼬옥 꼬옥, 마음을 담아. 내 나이가 고마울 때는 이런 때다. 난 누가 봐도 학생들을 예뻐하는 이모나 엄마 뻘 되는 교사이기에, 남자 학생들도 안아줘도 될 것 같은데 그건 아직 좀 실례가 될 것 같고 그래서 시도해 보지 못했다. 안아주고,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마지막으로 말한다.
"다음 학기에 공부하다가 너무 힘들면, 선생님 만나러 오세요. 커피 사 줄게요."
실제로 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도 나는 그런 말을 하고, 학생들은 감동한다.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힘이 될 테니까. 어떤 말은, 어떤 약속은, 들은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는데, 이런 당부가 그렇다. 졸업식 날은 우리가 무장해제 되는 날이다. 헤어지는 날이니까 바탕은 슬프지만 아주 큰 슬픔은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 대기하고 있으니 홀가분함이 더 큰 날. 누구는 계속 한국어를 배우기로 누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졸업식 날 우리는 보통 롤링페이퍼를 쓴다. 웃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철자가 좀 틀리더라도 한국어로 인사도 하고 감사도 표하고 친구 이름도 써 보고 그러는 날. 그런데 가끔은 롤링페이퍼 쓰는 시간이 무슨 쓰기 숙제하는 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친구 이름도 한국어로 처음 써 보는 데다가, 다른 나라 말로 내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비슷비슷한 말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쓰고 싶은 언어로 쓰세요'라고 말하면 분위기는 금세 반전 된다. 정말 열심히 쓰고, 계속 쓰고 또 쓴다. 진심이 나온다. 요즘은 사실 파파고만 있으면 친구가 쓴 메시지쯤이야 쉽게 번역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쓰고 있는 학생들의 메시지를 대충 훑어봤다.
난 처음에 널 봤을 때, 무척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사실 너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더라... (영어)
너는 정말 예뻐. 그리고 넌 정말 이타적인 사람이야. 니 덕분에 이번 학기 정말 즐거웠어. (이것도 영어. 그래서 이해했다.)
역시, 본심을 표현하기에는 모국어만 한 언어가 없다.
학생들이 나에게 준 롤링페이퍼를 펼쳐 봤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영어와 일본어는 그래도 띄엄띄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나도 기분이 들떠서, 학생들 웃으라고 소리 내어 영어로 읽어 봤다. 그리고 초급 일본어 수준으로 일본어 메시지도 읽어 봤다. 초등학생 같은 내 발음을 듣고 학생들이 돌고래 소리를 내며 웃는다. 선생님 너무 귀엽다며. 선생님 로봇 같다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말해 줬다. "그치? 좀 귀엽죠? 여러분이 매일 그래요. 여러분이 하는 한국어가 딱 이렇거든요.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이번에는 중국어 메시지인데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난 중국어는 대충 뜻은 이해해도 읽을 수 없다. 대만 학생, 중국 학생들에게 번역해 달라고 해 봤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앞다퉈 너도 나도 번역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 사람 저 사람이 번역을 동시 다발적으로 한다. 자기가 번역하고 싶어서, 자기가 선생님에게 읽어 주고 싶어서.
정작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사실, 상관없다. 학생들이 번역하려고 노력해 준 그 장면만이 내 기억에 또렷이,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