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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27. 2023

나 안전벨트 좀 메 줘라

그즈음의 어머니는,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고 계셨다.

일주일 사이에 응급실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병원에서는 해 줄 것이 없다면서 타이레놀을 처방해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갖고 계신 여러 가지 진통제를 돌려가며 드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온다니까 그날은 가지고 계신 진통제 중 가장 강한 것을 드셨고, 약에 취해 비몽사몽 어디든지 앉으면 주무셨다. 내 어깨에 기대어, 어디든 앉으면 주무시는 지경이었다. 그즈음 밤에 잠을 못 주무신 탓도 있었겠고, 진통제에 취한 탓도 있었을 거다. 여름이었는데, 어머니와 한 몸이 돼 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꽤 더웠다. 오른손엔 아이스커피를 들고, 왼손과 어깨로 어머니를 감싸 안고, 우리는 그렇게 한 몸이 돼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깜빡깜빡 졸다가도 정신만 드시면, 빨리 죽어야 하는데 안 죽어진다고, 너무 사는 게 힘들다고, 아파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셨고, 농약 좀 사다가 먹고 죽고 싶다는 말도 반복해서 하셨다.


그날은 신경정신과와 이비인후과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방 소도시는 어디든지 일방통행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병원 1층 정문에서 진료실까지 걸어가기도 힘드신 상황인데, 주차장은 다 멀고 길가에는 차를 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으니, 병원 바로 앞 일방통행 차로에 잠깐 차를 세웠다. 차로가 단 하나였기 때문에, 뒤에서는 정말 클랙션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할머니가 내리고 계신 것이 보일 텐데, 너무 한다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바로 뒷 차, 그다음 차, 너나 할 것 없이 경적을 울려 댔다. 사거리에 인접해 있는 길가이니 그러는 것이 무리가 아니지 싶기도 했다.


진료를 보고 내려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뒤에서는 빵빵 빵빵 난리인데, 우리 어머니는 나의 부축을 받아 시속 1km로 걷고 계셨다. 땀을 흘리며 뒤차들에게 고개를 크게 숙여 미안하다는 마음의 표시를 연실 하며 어머니를 가까스로 뒷좌석에 태워 드리고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 직후 어머니가 날 불러 말씀하셨다.


에미야, 엄마 벨트 메 줘라.


둘 다 진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간신히 안도한 직후였지만, 어머니의 그 말에 우리는 바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일방통행 도로를 막 벗어나 참이었고, 오늘의 미션-어머니를 모시고 두 곳의 병원 방문 및 진료를 끝내야 한다는-을 썩 잘해 낸 후였으니, 퍽 홀가분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의 그 말에 비로소 웃음이 났다. 보통 뒷자리에 앉혀 드릴 때에는 벨트를 꼭 메 드리는데, 너무 급한 나머지 내가 깜빡한 것이다.


안전벨트요, 어머니? 깜빡했어요. 잠시만요,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에게 그런 정신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기특했고, '역시 우리 어머니'라면서 웃었다. 우리가 너무 속 없이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는지, 어머니께서도 민망한 듯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게 편해. 벨트를 해야 편해.


그럼요, 어머니. 벨트를 해야 안정감이 있죠. 제가 너무 급해서 깜빡했어요. 비로소 우리는 함께 웃으며, 더운 여름날 뒷좌석에 어머니를 태우고, 시골길을 달렸다. 룸미러로 보니 어머니는 또 바로 잠이 드셨고, 우리는 오늘의 미션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시다 남은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한 달째 수정하고 보완하고 다시 읽는 중이다. 내가 쓴 내 글을 다시 읽는데, 종종 눈물이 난다. 꽤 오랫동안 쓴 글인데, 내 글을 다시 읽을 일이 그동안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책으로 만들기로 했으니까, 새로운 눈으로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읽는다.


그런데 문득, 어떤 글에서는 눈물이 난다. 아무래도 나는 내 글을, 편하게 읽기 어려울 것 같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가 그리워서다. 모든 그리움에는 눈물이 함께 한다. 몇 번을 다시 읽어야 할까, 그럼 익숙해져서 눈물이 안 나려나. 과거의 어머니를 읽다가 보면 현재의 어머니가 떠오르고, 그럼 산소를 두 달째 꽂고 계시다는, 얼굴이 많이 부었다는, 지금의 어머니가 그립고 걱정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계속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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