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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l 25. 2023

이제 그만 살고 싶으시다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

처음 어머니께서 그만 살고 싶다 말했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때가 문득문득 떠오르는데, 그때 어머니는 허리뼈가 부러져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셨다. 그리고 몸은 회복 됐지만 다니던 일터에서 쫓겨나셨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묘목을 심으러 다니셨는데, 차가 태우러 오고 태워다 주고 점심도 주고 간식도 주고, 일주일에 6일 근무하면 일당이 얼마 라며, 어머니가 매우 흡족해하시던 직장이다. 어머니는 80대 초반까지 그 일을 하셨는데, 허리뼈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고용주가 할머니 이제 그만 나오시라고 했다. 어머니의 건강과 안전을 우려한 판단이란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이제 일하러 갈 곳도 없고 돈도 벌지 못하니 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신 어머니는 한동안 우울해하셨고 그날 처음 그 이야기를 하셨다.

이제 나 좀 데려가슈.


아버님 제사상 앞이었다. 이제 나 좀 그만 데려가슈. 몇 번을 말하던 어머니.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도 술을 한 잔 올리고 싶으시다더니, 무릎 꿇고 앉아 술을 올리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그런 말도 붙이지 못했다. 아주버님 혼자서 "우리 엄마 오늘 왜 이러실까" 웃어넘겨 보고자 이런저런 말을 하실 뿐.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오랜만에 자식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한 번씩 하시던 말.

빨리 죽어야 하는데, 이렇게 오래 산다.


어느 날은 그런 말도 하셨다. 팔십 셋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팔십 셋이라는 나이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빨리 안 죽고 오래 살아 너희들 힘들게 한다. 귀찮아서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 반복되니까 노인들이 으레 하는 말이라 여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하시니까 다 흘려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너 달 동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는 게 너머(너무) 힘들어. 힘들어서 못 살겠어. 너무 아퍼.


너무 아파서 그만 살고 싶으시다니, 나는 그저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눈물이 났지만,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같이 울 수는 없었다. 왠지 나도 함께 울면, 어머니가 절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그리고 안아드렸다.


어머니와 함께 보낸 16년을 돌아보면, 사실 나는 손녀도 아닌 것이 며느리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게 10년을 보냈다. 30대의 나는 어머니와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나고 나도 너무 어려서, 데면데면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어렵고 나는 어머니가 어렵고 그랬다. 어머니에게 나는 그저 손님 같은, 손녀 또래 나이의 며느리. 나에게는 그저 우리 할머니 친구 같은, 먼 친척 같은 시어머니. 가족들도 웬만큼 큰일이 아니고서야 우리에게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막내 동생 부부는 아직 아이가 어리고 맞벌이하느라 정신없고 무엇보다 우리에게까지 뭔가 짐을 주고 싶지 않아 하셨다.


40대가 되면서 비로소 어머니가 안쓰럽고 걱정되고 눈물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나이가 들었고 나도 어른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더 이상 미루거나 물러설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는데, 내겐 어머니를 마주하는 일들이 특히 그랬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내게 시어머니 이상의 어떤 존재인 것 같다. 생의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과 측은지심. 나보다 먼저 태어나 살다가, 노인이 된 사람에 대한 애처로움. 그리고 나도 곧 그 노년을 맞이할 것이기에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유대감. 그런 것들의 합이 어머니에 대한 내 감정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내 남편을 낳은 분,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는 다만 그런 감정은 아니다.


자신하는데, 어머니 인생 자체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없다. 실질적 도움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생각에 관해서라면, 내가 최고다. 가끔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 보다도 시어머니의 인생에 고심하는 나이기에, 딸로서 많이 미안할 때도 있다. 헌데 그러면 뭘 하나, 내가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고심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 달라지는 게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달라지는 게 없다. 그냥 그분에 대한, 그리움만 쌓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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