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아름다운 일, 돌봄

9. 돌봄의 온도 / 이은주

by Agnes

어느 날, 돌봄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사 도우미', '산후 도우미' 등의 용어로 내 인생에 등장한 '돕다'라는 개념은 어느 순간 '돌봄'으로 확장됐고, '돌봄 서비스', '가족 돌봄' 등으로 더 확장 됐다.


'신들의 요양 보호사'를 쓴 이은주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신들'이란 누구일까, 책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던 차에, 내 어머니께서도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게 됐다.


나는 뭐든지 글로 배우는 사람이어서, 아직도 요리할 때 유튜브 보다는 블로그를 찾는다. 요즘 사람들은 뭐든 영상으로 본다는데, 영상이 너무 길면 1.5배속 또는 2배속으로 본다는데, 나는 왜 아직도 글을 찾아 읽는가. 내가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는 다분히 활자 중독이다.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어딘가에 가서 나는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데 읽을 것이 없다면, 나는 뭐든 찾아 읽었다. 예를 들면 음료수 병의 안내 문구, 영양표시, 성분명을 읽거나 아니면 핸드크림이나 샴푸 뒷면의 표시 사항이라도 읽었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가 있는 경우라면, 그것들을-철 지난 잡지라도-꼼꼼히 읽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책을 택했다. 나는 요양 병원이라는 곳이, 요양 보호사가, 요양 병원의 시스템과 돌봄의 세계가 읽고 싶었다.


그래서 '신들의 요양보호사'로 잘 알려진 이은주 작가님의 신작 <돌봄의 온도>를 읽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책이다.


이은주 작가님은 일본문학 번역가인데, 인지증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아픈 동생과 그 자녀들을 돌봤으며, 조카 손주까지 돌보고 있다. 한 돌봄에서 또 다른 돌봄으로 끊임없이 돌봄이 이어지는데, 서문에서 작가님은 '돌봄의 민주화'에 대해 말한다. 생경한 단어였지만 어렴풋이 받아들여지는 단어이기도 했다. 사회에서의 돌봄이란, 가족 내에서의 돌봄이란, 어때야 하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그리고 돌봄을 직시한다.


돌봄에도 중독성이 있다. 그러기에 지금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면 오늘 자신을 꼭 안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고도 스스로를 다독여 보자.

이은주, <돌봄의 온도> 14쪽, 헤르츠나인, 2023


돌봄의 중독성은, 말해 뭐 할까. 다만 '돌봄'이라는 단어와 '중독성'이라는 단어를 합쳐 놓으니 이렇게 슬픈 말이 됐다. 중독이란 단어는 폐해가 있다. 빠져들면, 중독된 사람의 끝이 좋지 않다. 나는 이 글을, 돌봄에 중독돼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작가님의 메시지로 읽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기까지, 몸도 마음도 힘들고 바빴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에 걸렸고, 첫번째와 달리 심하게 앓았고, 후유증이 오래 갔고, 후유증을 겪는 와중에 대상포진에 걸렸다. 사이사이 토요일 아침에는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 어머니께 갔고, 전화와 카톡을 붙잡고 살았다. 끼니를 거르거나 가볍게 먹을 때도 많았고, 정말 피곤한데 마음은 항상 조바심이 나서 일어나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무리가 가게 애쓰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가시고, 몇 년 전 어머니도 가신 사촌 시누이가 그런 말을 했다. '두 분 살아계실 때는 돌봐줄 사람이 옆에 사는 딸인 나밖에 없어서 그렇게 힘들더니, 돌볼 사람이 없으니 또 그렇게 허전하더라'라고. 홀가분하면서도 헛헛한 마음. 나도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소하신 첫주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이 너무 편하다. 물색없이 몸이 너무 편하구나.' 그런 생각.


작가님이 먼저 쓴 책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에는 1부 요양원에서의 하루, 2부 봉사자에서 요양보호사가 되기까지, 3부 데이케어센터에서의 하루, 4부 재가방문의 날들, 5부 나는 요양보호사입니다. 이렇게 구성돼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다음 주에 나는 그 책을 읽고 있을 거다.


요양원에서는 내가 어떻게 나이 들어야 좋을지 보여주었던 뮤즈도 있었다. (중략) 나는 그녀처럼 늙고 싶다. 스스로 화장실에 가고, 스스로 음식을 씹고, 그녀처럼 돋보기로 책을 읽고 싶다.

이은주, <돌봄의 온도> 99쪽


와, '그녀처럼 늙고 싶다'라니. 죽을 것 같이 덥던 여름이 지나 '입추'를 맞이했을 때의 기분이다. 뭔가 쾌적한 기분.


"엄마 이럴 때는 손을 펴주는 거야. 이렇게. 내가 강의자료 주고 갔지? (돌봄 받는 능력)이라는 자료. 거기에 나오잖아. 목욕받을 때 요양보호사 허리 안 아프게 도와주는 방법."

이은주, <돌봄의 온도> 107쪽


작가님의 어머니는 딸의 번역 소설을 함께 읽으셨던, 그리고 본인의 해안으로 많은 의견을 말하셨던, 텍스트를 향유할 줄 아는 분이다. 그러므로 '돌봄 받는 능력'이라는 자료를 읽고, 나를 돌봐주는 사람과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성숙하게' 말한다. 그런데.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자식을 키운 세대와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고 교육받은 세대와
오직 자신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대의 조합이
오늘날 총천연색 돌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은주, <돌봄의 온도> 169쪽


돌봄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낀 세대'다. 글을 모르시는 우리 어머니는 1세대도 아니고 0세대쯤 된다. 1세대는 '돌봄 받는 능력' 이른바 '돌봄 받는 자의 에티켓'이라는 개념을 접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접했으니, 이제 배워야 한다. 아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배울 것이 많은가.


우리 아버지가 즐겨하시는 말 중 하나가 '평생 배운다.' '돈 주고 배운다.' 이다. 배워도 배워도 평생 배울 것이 있고, 한번 두번 실패해 좀 손해 봤더라도 내가 또 하나 배웠으니 됐다는 말이다.


다같이 잘 살려면, 돌봄의 세계를 잘 마무리하려면, 다같이 계속 배워야 하나 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어 공부고 뭐고, 마음은 콩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