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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l 05. 2024

선새엥니이이이임

부득이한 사정으로 학교를 이틀이나 못 갔다.  

중요한 시기에-어학당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시기가 있다-담임이 자리를 비워 학생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담당 선생님이 출근을 못 하면 당연히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한다. 어느 어학당이고 대강을 대기하고 있는 선생님은 없으므로,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자기 담당의 수업을 하기에 바쁘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매일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그런 변수는 수업의 연속성과 안정감을 저해한다. 나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매우 미안했다.  


부득이한 사정이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지금 뭐가 중요한가’라는 마음이 시시때때로 든다. 책임감 있게 수업을 해내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내 사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 그런 마음으로 이틀이나, 수업을 쉬게 된 것이다.


이번 학기 내 학생들은 매우 심한 초급이다. 초급이라고 해도 다 같은 초급이 아닌 것이, 어느 학기는 ‘매우 심한 초급’이고 어느 학기는 ‘유창한 초급’이기 마련이다. 정말 백인백색, 아롱이다롱이, 뭐 그런 법칙이 여기에도 존재한다.


선생님이 이틀이나 쉰다는 말을 하기가 입이 안 떨어져서, 밤늦은 시간에 단톡에 말을 꺼냈다.  


“여러분, 미안해요.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못 가요.”


학생들은 울부짖는 이모티콘과 깜짝 놀란 이모티콘을 반복해서 투척한 후에, 각종 비문을 날렸다. “선생님한테 보고 싶은데요.” 이런 식의, 말은 통하지만 사실은 완벽한 비문을. 모레도 못 간다고 말해야 하는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런 마음으로 톡을 종료하고 어찌어찌 3일 만에 학교에 갔더니, 교실 입구에 앉아있던 학생이 날 보자마자 말했다.


“선새엥니이임, 보고 싶어요”

또 다른 학생은 뚫어질 것 같은 눈빛으로  

“선생님(도미솔 음가로)”

 리고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보고 싶었어요.”


그야말로 아우성 아우성. ‘보고 싶어요’와 ‘보고 싶었어요’가 왜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지, 그냥 둘 다 같은 걸로 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인지 10분 넘게 토론하는 학생들이. 어쩜 이렇게 노래하듯 한국어를 변주하고 찰떡같이 사용하는 것인지. 나는 지금 억양과 강세, 목소리 톤 등을 활자화할 수 없는 것이 진심으로 안타깝다.  


첫날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우리 반 미국계 학생이 무려 수업 시간 중에 급히 톡을 보내기도 했다.


“You are not here :( ”


한국어를 칠 겨를도, 파파고를 돌릴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곧 정신을 차렸는지 “내일 만아요.” 나름의 노력이 보이는 비문.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선생님 곧 갈게, 기다려.


고작 2일 자리를 비워 놓고 마치 2주 쉰 듯이, 애틋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으로 준비해 간 과자를 풀었다.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즐겁게 해 줘야지 ‘라는 마음으로 전날 밤 급하게 새벽 배송으로 시킨 한국 냄새가 나는 조그만 쌀과자를. 학생들은 그 조그만 과자에 환호하면서 무려 ‘바로’ 뜯어먹으면서 또 웅성웅성. “어, 메이딘 베트남?” “선생님이 베트남 여행?” 학생들의 장난을 들으면서 하하하하하. 한국어 교사 십 년 만에 이제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되었구나, 며칠 동안 너무 마음이 복닥 복닥 했는데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편하구나. 이런 천진난만함이, 나는 그리웠구나. 비록 베트남은 가지 못하고 병원 생활자의 보호자 노릇을 하다가 왔지만,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반쯤은 지켜 냈고 반쯤은 박탈당했지만, 나는 쓸쓸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 가고 싶었고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있을 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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