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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n 24. 2024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란

feat 사춘기 아들

드라마를 보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 친구 엄마들은, 아이들이 클 때를 이야기하며 상념에 젖는다. 국어 8등급이었던 아이가 1등급을 찍고 고대하던 명문대에 들어갔을 때, 아이의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라고 회상한다.


그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내 아이가 시험에서 1등 했을 때, 내 아이가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 내 아이가 많은 아이들 앞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부모는 희열을 느낀다. 그런 류의 쾌감은 진짜, 내가 부모여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희열.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류의 희열을 많이 느꼈다. 특히 아이가 콩나물 자라듯 눈에 보이게 쑥쑥 크던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나는 새로운 희열을 느꼈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쇼핑몰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 안에서 가장 작은 사람에게 쏠린다. 키즈 카페 엘리베이터가 아니고서야, 많은 경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는 내 아이 하나였다. 그럼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큰 아이들을 둔 중년의 부부들이, 풋풋한 젊은 커플들이, 내 아이에게 말을 붙이고 웃어주고 눈을 맞춰줬다. 그럴 때 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내 엄마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엄마집과 내 집 사이에는 전철역이 있다. 내 출퇴근 시간에 맞춰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전철역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그 계단을 올라 다닐라 치면, 얼마나 엄마가 의기양양했었는지 지금도 종종 말씀하신다. 도현이가 얼마나 예쁘고 잘생겼는지(할머니 피셜) 꼬마가 계단을 종종 올랐다니는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다고. 내가 아이의 엄마라는 것 만으로, 내가 저 꼬마의 할머니라는 것 만으로, 우리는 충분했다. 아이 덕분에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힘든 줄 모르고 하하 호호 살아냈다.


오랜만에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났다. 이제 곧 머지않아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이제 곧 머지않아 대학생이 될 우리의 아이들. 기저귀 갈 때 만난 사이들인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우리의 아들들이 얼마나 엄마들의 속을 답답하게 하는지 우리는 배틀을 벌였다. 한참 깔깔 거리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귀여운 우리의 아들들에 대하여 말하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매우 꼬여있다. 생각만큼 따라와 주지 않고 생각만큼 공부에 정성을 들이지 않는 아이로 인해, 틈만 나면 나는 아이에게는 잔소리를, 나 자신에게는 자책을, 내 하루하루에는 한숨을 주고 있다.


어쩌면 나도 드라마 속 엄마처럼, 내 아이가 내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를 바랐나 보다. 그렇게나 세상을 다 가져다주고 싶어 했던 나인데, 역설적이게도 요즘의 나는 그러고 있다. 아이가 나에게 세상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고 있다.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아이에게서.


시간은 가고, 부모는 늙는다. 그리고 아이는 큰다. 부모의 고생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만큼이나, 아이가 내게 준 호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도 늙는데, 그래서 자꾸 잊는데, 왜 이렇게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늘어만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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