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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05. 2022

현빈과 손예진 결혼하던 날

학교가 들썩였다

나는 드라마가 좋다.


물론 잘 만든 드라마, 웰메이드 드라마가 제일 좋지만. 심지어 나는 유치해도, 막장이어도, 통속적이어도, 시청률 0%대의 드라마라도, 나는 드라마가 좋다. 드라마는 항상 현실의 반영이기에, '말도 안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다소 이상한 스토리 라인조차도, 그건 아마 현실 어딘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의 반영일 거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팬데믹이 왔을 때,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덜 심심하게 덜 불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넷플릭스로 시작하여 왓차, 웨이브, 티빙, 디즈니플러스, 이제 애플까지... 부끄러워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만큼 나는 남몰래 OTT를 섭렵 중이다. 내가 매월 사들이는 책값을 생각해 볼 때, OTT 서비스에 지불하는 이용료는 절대 아깝지가 않다.




3월 31일 금요일, 현빈과 손예진 커플이 결혼을 했다. 마침 그날 내가 가르칠 단원은 <결혼식>이었고, '청첩장' 단어 제시와 함께 나는 진짜 현빈과 손예진의 청첩장 이미지를 띄웠다. 학생들은 환호했고 생각보다 더 열렬한 반응에 나는 흡족했다.


선생님, 오늘은 저에게 정말 특별한 날이에요.
'사랑의 불시착'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거든요.


저도 그래요. 선생님은 드라마를 사랑하고, 현빈도 사랑하고, 손예진도 사랑하거든요.

학생들과 깊은 공감을 나누는 순간이 있다.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어요 - 우리 모두가 함께 슬퍼하고

빨리 마스크를 벗었으면 좋겠어요 - 상상만으로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함께 기뻐하고

BTS 콘서트에 갔다 왔는데요 - 눈으로 부러움과 환호를 함께 날리고


몇 해 전 송중기-송혜교 커플이 결혼을 발표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동료 선생님들은 그날, 9시 수업 아이스 브레이킹을 모두 동일하게 송송 커플 결혼 발표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되던 날(캐나다 이민국이 접속이 안된다며 투덜대던 귀여운 미국 학생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3월, 좋은 소식 나쁜 소식 밝은 소식 어두운 소식에 학교가 함께 들썩였고 교실이 함께 들썩였다.


그런 날들이 참 좋고,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진심으로(내 언어가 짧음을 통탄하며) 내 마음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지만(가족이건 동료이건 간에) 내 언어가 미흡함을 통탄하면서까지 나 아닌 다른 누구를 설득하려고, 내 마음을 설명하려고, 내 의도가 오해 없이 전해졌음을 확인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고, 않는다. 하지만 오직 교실에서만큼은, 오해 없기를,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행한다. 그리고 학생들도 그러하다. 우리는 언어를 배운다는 목적 하에 서로의 진심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 순진한 마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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