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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11. 2022

선생님은 교수예요?

아니요.

할머니 학생이 한 분 계셨다. 전직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셨고, 은퇴 후 비로소 시간과 여유와 마음이 생겨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고. 암기는 다소 느리지만 열정적으로 배우고 호탕하고 문법에는 파고드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분께 한글부터 초급 한국어를 가르쳤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 항상 영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분. 질문도 많았기에 집에 와서 grammar english를 뒤져 보기도 했었다. 이 분이 알고픈 게, 혼동하는 개념이 뭔가 진심 궁금했고, 그렇게 알아낸 것을 설명해 주면 '유레카'를 외치며 너무 기뻐했다. 나도 너무 기뻤고 즐거웠다.


그런데 그분은 항상 나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큰 소리로 항상 '교수님'을 반복해서 불렀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날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어학당의 모든 학생들은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분은 그랬다. 나는 교수가 아니지만, 아직 우리는 소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에, 적극적으로 호칭을 바로 잡아주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내가 가지고 들어가는 연습지, 활동 카드, 각종 유인물들을 보며 이걸 누가 만드냐, 조교는 있냐, 아니 이걸 직접 교수님들이 매번 만드냐, 말도 안 된다, 힘들겠다, 진심 안타까워하셨다.




어느 날 그분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쉬는 시간에, 같은 반 영어권 친구에게 왜 우리가 교수가 아닌지를 (영어로) 설명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 본인이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알아냈는데, 그녀는(학생들끼리 교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she'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냥 '그녀'다. 우리 문화에서는 누군가를 '그/그녀'로 부르는 일이 좀처럼 없기에  조금 많이 이상하지만...) 박사가 아니고 석사다. 교수진은 따로 몇 명만 있다. 한국어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교수가 아니다. 그런 말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에게, 우리 강사들에게 유난히 관심과 애정이 있는 학생들이 있다. 강사들이 100명이면 100가지의 수업이 나오듯이, 학생들이 천 명이면 천 가지 생각들을 한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라기보다는 개인 성향의 차이다. 그런 학생들은 나에게 주말에 뭐하는지 묻고 요즘 무슨 드라마를 보는지 묻고 한국어를 얼마나 가르쳤는지도 묻고 어느 나라 여행이 제일 즐거웠는지도 묻는다. 초급이지만 한국어가 제법 유창한 한 학생이 '왜 선생님은 대학에서 가르치는데 교수가 아니냐' 물은 적도 있다. 그 학생이 진심 궁금해 하기에, 교수라기보다 우리는 강의전담강사(대학에서 강의를 하지만 연구는 하지 않는)에 가깝다고 좀 궁색한 설명을 한 적도 있다.




교수가 될 만큼 많이 공부하지 않았고  능력도 부족하기에, 내가 교수가 아닌 것이 마음속에 마땅치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내 직업에 정확한 명칭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당장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친구야, 너는 요즘 무슨 일을 하니?"라고 묻는다면, "응, 나는 1) 한국어 교사야 / 2) 한국어 강사야 / 3) 한국어 교원이야 4) 한국어 선생님이야"  이 중에서는 4번이 제일 자연스러운데, 나는 그냥 이렇게 풀어서 말한다. "응 나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이렇게. 그럼 또 반복된다. "아~ 그러면 교수야? 시간 강사야?" 뫼비우스의 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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