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고딩 근황 6탄
고등학교 2학년 아이의 짧았던 여름방학이 다 끝나 간다.
스터디 카페에 학교처럼 등교하는 아이는, 보통 7시 30분~8시 사이에 아침밥을 먹고 스카로 간다. 그리고 가끔은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가고 가끔은 학원 근처에 가서 사 먹는다. 나는 출근이 늦은 편이지만 아이가 점심 먹을 때까지 있지는 못한다. 그래서 보통 간단하게 한 그릇 음식을 준비해 놓고 가는데, 요즘은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워서 요리한 음식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가야 한다. 음식이 완전히 상해 버린다면 알아채고 안 먹겠지만, 약간 변질된 음식은 못 알아채고 먹을까 봐. 참나원. 고2 아이를 두고 별 걱정을 다 한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붙인다. 이건 불고기, 이건 제육볶음, 이건 복숭아 이런 식으로. 아이는 냉장고 속 많고 많은(하지만 먹을 것은 없는) 반찬통 중, 입맛에 맞는 것을 딱 찾아 먹는 재주가 (아직) 없다. 그냥 눈높이에 있는 것을 먹는 것 같고, 씹을 수만 있다면 보통 차가운 채로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한 번 돌리면 훨씬 맛있을 음식들을, 그게 그렇게 귀찮나. 아니, 찾아서 먹어주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날도 그렇게 써서 붙였다.
연잎 삼겹살-전자레인지에 4~5분 돌려서 먹어
김치
바로 옆에 김치를 나란히 두면서 굳이 '김치'라고 써서 붙인 이유는, 삼겹살은 김장 김치랑 먹어야 제맛이기 때문이다. 또 조합 안 맞는 단무지 무침이랑 먹으면서 나중에 나를 보자마자 "그런데 엄마, 김치가 없던데?"라는 말을 할까 봐 선제 방어를 한 것이다.
집에 와서 아이의 흔적을 보니, 야무지게 잘 데워 드신 것 같다. 남은 것도 냉장고에 다시 넣어 두고 간 것을 보니 아이가 꽤 큰 것 같다. 아니 다 큰 것 같다. 대충 아이의 흔적을 정리하고 나도 저녁을 먹으려고 보니 식탁 한쪽에 아이가 모아 둔 포스트잇이 눈에 보인다. 어머나, 웬일로 아이가 답장을 썼다. '김치'라고 쓴 포스트잇 아래에 작고 기어가는 글씨로 이렇게.
김치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
하하하하하. 몇 년 만에 받아 보는 답장인지. 고단했던 하루가 한 방에 씻기는 느낌이다. 이런 막 쓴 글 한 줄로 엄마를 감동시키다니. 역시, 아이는 이런 재주 하나는 끝내준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선생님들이 미칠 때쯤 방학이 오고 엄마들이 미칠 때쯤 방학이 끝난다고. 아이가 교복을 입을 날들이 별로 남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요즘 방학도 좋다. 하루에 아침 한 끼 집에서 먹던 아이가, 하루 두 끼 세 끼 집에서 먹는 것도 좋고. 하루에 길어야 한 두 시간 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던 아이가, 세 시간 네 시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좋다. 굳이 마주 보고 대화하지 않아도, 한 공간 안에 저기 복도 끝 방에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좋다.
혹시 아이가 이 글을 보면 "엄마 말도 안 되는 거짓말 한다."라고 하겠지. 아이가 다 큰 아이의 부모가 될 때쯤이면 이 맘을 알려나. 그런 날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