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Apr 26. 2022

상상력이 빈곤한 선생님

feat 이윤주 작가 <나를 견디는 시간>

우리는 일기예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끼리 여행을 계획했는데, 일기 예보에서 여행 날짜에 날씨가 안 좋을 거라고 한다. 한 친구는 예약을 취소하고 다음에 가자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가기로 한 거니까 그냥 가자고 한다. 옥신각신 실랑이를 하는 스토리를 펼치며 나는 '일기 예보, 날씨'에 대한 단어를 확장했고 여러 가지 표현을 가르치고 있었다. 목표한 학습을 마친 후 우리는 항시 그렇듯 (본론보다 재미있는) 일기예보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사담을 나누었다. (사실 난 50분의 수업 중 마지막 5분 남짓한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여러분은 어떡할래요?

그냥 갈래요? 취소할래요?

(여러분 고향에서는) 일기예보가 보통 맞는 편인가요? 안 맞는 편인가요?

우리나라는 여러분도 <기상청 사람들>이라는 드라마에서 봤듯이.... (셀프 디스로 넘어가지 않도록 항시 주의해야 한다. 웃자고 한 얘기가 이상하게 비치면 곤란하니까.)


"선생님, 태국 사람들은요, 일기예보 안 봐요.
왜냐하면, 항상 덥고 항상 비가 와서 (볼) 필요 없어요."

 

아하! 덥고 덥고 덥고 덥구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 깔깔깔 웃고 난리다. 대만, 홍콩 등 더운 나라 학생들끼리 정말 그렇다며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든다. 계절을 가르칠 때, 더운 나라 학생들은 여름, 여어름, 여름, 여어어름이냐고, 여름 중에도 좀 덜 더운 여름은 가을이라고 부르고 서늘한 여름은 겨울이라고 부르냐고, 그런 것들을 많이 묻고 이야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이 친구들이 일기 예보를 전혀 안 볼 줄은 참말 몰랐다.


"선생님, 네덜란드는요, 일기예보 진짜 절대 안 맞아요.
지난주에는 하루 중에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오후에는 반팔을 입었어요."


어느 날은, 네덜란드 학생이 비가 오는지 보려고 창밖을 한참 살펴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나는 얼른 내려다 보고,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가네요! 비가 오나 봐요."라고 말해 줬더니,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선생님. 한국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우산을 썼는지 보면 되는군요! 네덜란드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아서요."라며 정말 할 말 많은 눈으로 배시시 웃었다.


할 말 많은 눈. 나는 그런 학생들의 눈을 사랑한다. 저 눈 속에 담긴 사연들을 듣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다정하게 접근해도 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내 앞에서 긴장한다.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지난주를 다음 주라고 말한다거나, 맛있다를 멋있다로 바꿔 말한다. 내가 외국인 앞에서 영어를 할 때와 완전 똑같다.


이건 네덜란드 사람 이야기이고, 내가 이야기 나누지 못한 다른 나라 학생들은 또 다르겠지. 나는 이럴 때마다 얼마나 내 상상력이 빈곤한지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학생들을 언어권 별로, 나이대 별로,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얼마나 그루핑을 해왔을까 되돌아본다.


개인적으로 '나쁜 놈'보다 '상상력이 누더기인 놈'을 더 견디지 못한다.
(중략)
'상상력 누더기스트'들은 바로 그 빈곤한 상상력 탓에 저마다의 이유로 온라인에 모인 사람들을 일요일 저녁 리모컨 돌리듯 재단한다. 저이는 맨날 음식 사진만 올리니까 먹보, 저이는 맨날 해외여행 사진만 올리니까 부르주아, 저이는 맨날 일 얘기만 하니까 워커홀릭, ...

이윤주 작가, <나를 견디는 시간> 123쪽


약간은 결이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상상력 누더기스트'에 대해 읽었다. 나는 그 이후로 줄곧,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어떤 상황이 예측되며 순간 확 우울해질 때마다, 결국 모두 나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봐 온 저 동료, 저 동료에 대해 내가 계속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이유는, 나의 상상력이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내가 알고 있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캐릭터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상상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키리바시에는 폭포가 없다고 한다.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산이 없고, 폭포도 없다. 그 학생은 내가 보여준 사진을 통해 '폭포'를 처음 봤다고 했다. 평지에서만 자란 그는, 높은 절벽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설명을 전혀 이미지화하지 못한 것이다.


상상력이 빈곤하지 않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가 전체로서의 부모를 만나듯이, 학생도 전체로서의 선생님을 만난다고 나는 생각한다(아이는 전체로서의 부모를 만난다,라고 소아 청소년과 의사 선생님이 말했던 것 같다. 서천석 박사님이었나...). 상상력 빈곤의 문제를 처음 깨달은 것은 교실에서였는데, 곧 그것은 내 삶 전체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빈곤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과 내 수업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유별난 구석이 있는 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