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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30. 2022

감동의 파파라치컷

내 인생의 황홀한 순간

가끔 학생들과 문화 체험을 하러 간다. 박물관이나 고궁, 각종 만들기나 요리 체험 등이다.


태권도를 배우기도, 활을 쏘기도, 부채춤을 추기도, 궁을 거닐기도, 잡채를 만들기도 한다. 뭐가 되었든 힘든 만큼 재미나고,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면 더욱 즐겁다. 교실 수업만 하는 것보다 가끔 나가면 나 또한 기분 전환도 되고 너무 좋다. 


옛날 옛날에는,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서 가끔 교실에서 학생들을 찍기도 했다. 초상권이고 저작권이고 그런 거 아직 모르던 시절, SNS를 하더라도 친구끼리 삼삼오오 비공개로 하던 시절이다. 특별한 날에는 무려 셀카봉을 준비해 가기도 했었다. 셀카봉을 보면 학생들은 '역시! 한국인'이라며 좋아했고, 이후 고프로 같은-셀카를 더욱 효과적으로 찍게 해 주고, 셀프 동영상도 쉽게 찍을 수 있는- 기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급격히 시대가 바뀌더니... 어느 날 학생들의 영상과 사진들이 동의 없이 SNS에 떠돌아다니는 시대가 왔고, 그게 서로 불편해졌고, 우리는 서로 찍고 찍히는 걸 조심하게 됐다. 그래서, 서로서로 사진을 찍는 게 비교적 괜찮은 날은 문화 체험을 하는 날 뿐이다.




이상하게 문화 체험하는 날은 어린이집 엄마 모드가 된다. 담임 반 학생들 전체가 들어오게도 찍어야 하고, 과정별 인증 샷도 찍어야 하고, 무엇보다 각각의 인생 샷도 찍어주고 싶다. 학생들은 무려 유학을 왔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할지 알기 때문에 예쁘게 잘 찍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날도 무진장 찍어댔더니, 2시간이 채 되기 전에 80%였던 배터리가 1%가 되어 버렸다. 아직 체험이 많이 남았는데 낭패다. 보조 배터리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뭐, 어쨌든 휴대폰은 꺼져버렸고, 고심하다가 한 학생에게 스마트폰을 빌려 남은 과정을 어찌어찌 찍고, 마지막 단체샷은 다른 선생님들께 부탁해 마무리를 했다.


집에 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 학생들에게 보내주고 있는데, 한 학생에게 여러 장의 사진이 왔다. 카메라를 가져온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비싸 보인다, 주로 뭘 찍냐, 아이돌을 찍냐, 경치를 찍냐, 사람을 찍냐,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와! 휴대폰으로 찍은 것과는 색감과 분위기가 다른 사진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사진을 넘기다 보니 내 옆모습, 뒷모습들을 찍은 사진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두 번째 와! 사진을 찍는 것은 나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기에 누가 날 찍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 특히 '찍습니다'하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애정 담긴 손으로 셔터를 눌렀다는 것이, 매우 새롭고 마음 따뜻했다. 사진 속에는 나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궁 곳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는 나, 길 안내를 해야 하기에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나, 그리고 학생들과 하하호호 즐거운 나(의 뒷모습). 


어떻게 이 직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물론, 물론... 그늘이 없는 직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문화가 너무 다른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그래서) 고단하다. 그리고, 모든 직업이 그렇듯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참 좋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내 일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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