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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09. 2022

삶의 황혼을 거니는 이의 통찰

5. 노년 끌어안기 : 로르 아를레르

5. 노년 끌어안기 : 로르 아를레르

노년 끌어안기. 부제는 <삶의 황혼을 거니는 사람의 고백과 통찰>. 저자 로르 아를레르는 1950년생, 우리 나이로 73세이다. 노년에 대한 여러 잠언들을 밀도 있게 엮으면서 노년을 겪는 본인의 통찰도 품격 있게 첨가했다.


책은 <나이 감각> - <나이 경험> - <나이 관념>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1. 차분하게 노년에 대해 정의한 후 2.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설렘을 한껏 보여주고 3. 현실을 신랄하게 직시한 다음 4. 노년의 쓸쓸함을 인정하며 마무리한다.

사실 이렇게 관념적으로 노년을 정의한 책이 많지 않기 때문에 1번과 2번을 읽으며 약간 황홀했다. 그리고 3번은 조금 읽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노년은 죽음으로 가는 계절의 끝자락이기 때문에. 그리고 4번을 읽으며 뭔가 마무리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무엇보다 이 문장에 도취됐다.

"마흔 살은 청춘은 노년이지만, 쉰 살은 노년의 청춘기다." - 빅토르 위고
-책 36쪽-

문장을 읽은 (도저히 혼자 알고 싶지 않아서) 지인 명에게 보냈더니, 어떤 이는 '노년이어도 청춘의 노년 하고 싶다' 했고 어떤 이는 '기대된다'라고 했고 어떤 이는 '파이팅'이라고 보내왔다. 아무리 그래도 누가 노년이 기대될까. 그냥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까 해서 호기를 부려보는 것이다.

내가 20대 청춘일 때는 술과 노래방이 정말 유행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은 곧잘 마셨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신곡을 알아야 하고 리듬에 취해야 하는 게, 청춘답게 잘 놀아야 하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빨리 늙고 싶다. 노래방에 안 다니는 나이가 되고 싶다. 신곡 몰라도 되는 나이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이 참 좋다.


갑자기 폭우가 몰아치는 날 저녁에 벼락처럼 세월이 당신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을 피하려면
자신이 늙는 걸 바라보는 습관이,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다.
<책 55쪽>

보고 싶지 않아도 필터 안 낀 카메라로 자주 내 사진을 찍고, 자주 내 나이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외면한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산 자의 고통. 당신을 낳은 어머니를 잃고도 삶이 당연하게 굴러가리라고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책 120쪽-

어제 사촌이 다녀갔다. 3년 전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그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납골당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리고 슬퍼하는 아버지의 형제들을 위로하기 위해 어버이날에 어린이날에 친지들도 방문한다. 살아있는 부모도 한 동네 살지 않는다면 월 1회 방문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그가 슬픔을 추스르는 방법이라면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기를 바란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쓴다. "모든 걸 배워야 한다. 말하는 것부터 죽는 것까지."
-책 133쪽-

배워서 되는 일이라면, 참 좋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젊어질 시간이 정말 있었던가요?
-책 154쪽-


저자는 프랑스인이고 저널리스트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의 노인을 대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도 많고 인근 유럽의 국가들과의 비교도 많다. 내가 현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프랑스, 네덜란드, 인근 국가들의 노인 정책과 사회 분위기를)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지구 반대편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도 같다.  이런 결론들을 보면 그렇다.

이 몰이해, 이 침묵이 낳는 분노는 오늘날 더 크다. 노화는 점점 더 질병이 되고 있고, 누구 한 사람 화내는 일 없이 조용히 민주적으로 '악마화'되고 있다. 노화는 가장 취약한 약자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폭로한다. 사실 노화는 가장 불안정한 이들에게 더욱 힘든 체험이며, 여성들은 이중의 소외를 최전선에서 겪고 있다. 노년은 불평등이 나날이 더 명백하게 드러나는 삶의 시기이다. 오직 특혜 받은 이들만이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는데, 그런 이들은 한 줌 밖에 되지 않는다.
-책 224쪽-


노화는 죄가 아니다. 노화 자체만으로 대상화되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서 나이 드는 것도 배워 보겠다고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젊어질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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