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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10. 2022

교실에서 내려다본 바깥 풍경

어버이날을 준비하는 어버이들

가정의 달, 5월이다.


5월에는 어린이날이나 석가탄신일 둘 중 한번, 운이 좋으면 두 번 다 쉬는 날이다. 쉬는 날이기 때문에 나는 왜 쉬는지를 설명하며 특별한 날이 많은 한국의 5월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은 없는 나라도 많고 쉬는 날이 아니어서, 요즘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5월에는 가족들이 만나서 파티를 하고, 선물도 많이 주고받아요." 여기까지 말하면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본인 나라의 어머니 날, 아버지 날 등을 말하고,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의 선물로 뭘 해 줬는지 묻고 궁금해한다. '나는 사실 가정의 달이 참 피곤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젊은 학생들에게 그 정서를 설명할 길이 없기에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내가 수업하는 교실의 창밖은, 학교가 아니라 주택가다. 캠퍼스의 끝에 있는 건물이어서, 왼쪽 교실에서는 캠퍼스가 내려다 보이고 오른쪽 교실에서는 주택가가 내려다 보인다. 오른쪽 교실에서 수업하는 나는, 4~5층 높이의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의 옥상을 자연스럽게 항상 내려다본다. 나는 아직도 (철없이) 옥탑방, 옥상이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기 때문에 남들은 옥상을 어떻게 사용하나 종종 관심을 갖고 내려다본다. 하지만 그동안 겨울 내 옥상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고, 철봉이나 운동기구가 있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 황량하니 휑댕그래한 옥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옥상에 사람이 등장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셨는데, 그분은 포차에 있을 법한 (겨우내 버려졌던)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에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하셨다. 며칠 정성 들여 색을 칠하시더니... 며칠 후에는 할머니도 등장하셨다. 할머니는 화단 가득(화분이 아니고 분명 화단이라 할 수 있는 규모다) 뭔가를 심으셨다. 그리고 텐트가 등장했다. 그냥 그늘막 사이즈가 아니라, 펜션에 가면 바베큐장에 있을 법한 사각 텐트. 다음은 바비큐 그릴이었다. 마침내 할머니는 그 텐트 아래에서, 할아버지가 칠한 의자에 앉으셔서, 바비큐 하려고 만든 것 같은 화로에 들솥을 올려놓고 뭔가를 삶기 시작하셨다. 흥미진진.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은 창문에 몰려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뭘 하시나 오늘은 뭐가 하나 늘었나 관찰하기 시작했다(나쁜 의도는 없지만, 괜스레 관찰을 당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참 죄송하다).

어느 날은 뭔가 나무를 태우는 것 같더니 타는 냄새가 교실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신고를 해야 한다며 위험하다며 토론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1~2주에 걸쳐 일어난 일이다.




우연찮게 야근을 하게 된 금요일 밤, 건물을 내려가며 정말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우리가 즐겨 구경하는 그 집 옥상을. 텐트 안에는 조명도 켜져 있었는데, 멀리서 바라본 옥상은 정말 따스하고 운치 있기 그지없었다. 그때 알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버이날을 준비하고 계셨다.

화단 가득 심어진 상추, 10명 넘게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큰 텐트, 그 안에 놓인 예쁘게 단장한 의자들. 그 안에 도란도란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그림자. 한국의 가정의 달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진즉 눈치챘다면 학생들에게 가정의 달을 설명할 때, 저 아래 보이는 저 집의 옥상에, 한국의 가정의 달이 있다고, 옥상에서 삼겹살을 굽기 딱 좋은 계절 5월에, 우리는 저러고 산다고, 부럽지 않냐고, 나는 참 부럽다고, 말했을 텐데,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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