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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11. 2022

너의 인생 전체를 생각해 봐. 15분, 별거 아냐.

내가 일하는 곳은 대학 어학당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학기(세 달)에 두 번 시험을 본다.


필기시험도 보고 말하기 인터뷰도 본다. 자격증을 따러 온 게 아니라 말을 배우러 온 학생들이기 때문에, 인터뷰 시험은 중요하다. 우리는 시험과 인터뷰 결과에 따라 학생을 (더 어려운 걸 배우는) 다음 급으로 진급시키거나 아니면 현재 급을 다시 한번 배우게 한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똑같은 내용을 또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시험과 인터뷰에 매우 예민하다.




선생님과 1:1로 10분~20분 동안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매우 긴장되는 일이다. 그것도 한국어 원어민이라니(학생들 입장에서 나는 외국인이다). 주어진 미션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 외국인 앞이라는 긴장감, 자기 혼자라는 외로움(또는 부자연스러움). 그런 것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종종 학생들은 과도하게 긴장한다. 손을 덜덜 떨기도 하고, 계속 침이 말라 입술에 침을 바르기도 하고,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울어버리는 학생도 나온다. 그리고 울다 보니 자국어로도 한국어로도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사실 교사도 당황한다. 타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이야기하다가, 고향의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다가, 한국을 떠나기 싫다고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흐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과도한 긴장감에 긴장이 점점 올라가는 것 같더니,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짧은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진정을 해야 무슨 이야기든 할 것 같아서, 정말 짧은 영어로 이야기했다.


"실수하면 어때? 문장이 좀 틀리면 어때? 무슨 상관이야. 아무 문제없어. 니 인생 전체를 생각해봐. 사실, 인터뷰를 통과하건 못하건, 그건 니 인생에서 별로 큰일이 아냐. 걱정하지 마."


그리고 긴장이 풀린 확인한 후, 웃으라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그렇게 무섭니? 내 캐릭터의 장르가 호러였구나. 난 로맨틱 코미디가 좋은데. 나 실망했어." (학생에게 반말로 한건 아니고, 여전히 내 짧은 영어로 대화는 이어졌다.)




가끔 학생 앞에서 인생의 선배가 될 때가 있다. 내 나이는 점점 더 많아지고 그러므로 학생들과의 나이 차이는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학생들과 나와의 관계는 계속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것을 알아채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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