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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17. 2022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한 편의 연극을 하는 마음으로

나는 가끔 교실이 무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은 관객으로서(무려 등록금을 내고 온 유료 관객이다) 나의 공연을 볼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나는 수업을 위해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그날에 맞는 오프닝을 거쳐, 도입-전개-절정-결말의 시퀀스를 실연한다. 동일한 공연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관객이 웃는지, 어느 지점에서 관객이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다음 수업은 그 전 수업과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 풍부해진다.


프랑스에 간 첫해,
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몸과 목소리 사용하기' 수업을 들으러 서쪽 끝의 항구 도시 브레스트로 갔다....

특별히 재미있었던 건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연습을 한 일이었다.
강단에 선 상황에서는 저 둘을 잘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할 거라고 위그가 말했다.
한두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청중을 존중하며 모두에게 발화하되, 판단에 따라 어떤 순간에는 특정 지점에 눈길을 돌려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목정원 산문,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책에서 이 단락을 읽었을 때, 여태껏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어떤 무언가가 이렇게 개념화됨을 알았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몸과 목소리 사용하기', '전체 청중을 존중하며 모두에게 발화하되..... 특정 지점에 눈길을 돌려 주의를 환기할 수 있어야.....'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나는, 순간적으로 집중해 모든 학생들이 나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벅차다. '어쩌면 한국인이 한국어를 이렇게 모를까' 어려운 문법과 부족한 화용 지식에 말문이 막혀 자괴감이 바닥을 치는 날도 있었지만(사실 여러 번), 그보다는 한국어 원어민 화자로서 자신 만만하게 무대 위에 올랐던 날이 더 많았다. 준비를 많이 한 날은 공연이 매우 잘되었고, 준비가 부족한 날은 어김없이 무대가 나만 아는(아니 관객들도 눈치챘을) 긴장감으로 어영부영 끝났다.


나의 표정과 나의 제스처, 나의 눈빛은 훌륭한 교구다. 가끔 내가 말하지 않은 무언갈 학생들이 느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내 눈빛으로, 내 목소리로, 내 몸짓으로, 내가 주고자 했던 것들이 그날의 공기로 완성되는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마무리하면 내가 자칫 연예인 병 걸린 일반인 선생님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상을 잠시 보자면.......

내 마음과는 별개로 학생들은 진짜 젊고 예쁜 선생님, 잘생긴 선생님을 좋아한다. 언젠가 남자 고등학교에 계신 지인이 웃겨 죽겠다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줌마 선생님한테는 시험 문제를 왜 이렇게 어렵게 냈냐고 개기는 애들이~, 젊은 여자샘한테는 글쎄 문제 틀려서 죄송하대. 이것들이~"  나도 그랬으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멋대로, 학생들이 예쁘다. 학생들이 마냥 예쁜 이유에는 내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학생들과 내 아이의 나이 차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뭐, 어차피 사랑은 내리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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