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아듣는 한국어

눈치 빠른 한국어 교사

by Agnes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친 지 10년쯤 되다 보니, 학생이 통 이상한 말을 하는데 나는 알아들을 때가 있다. 순서도 안 맞고 발음도 이상한 말을 쏟아 내는데, 담임교사인 나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을 한다. 옆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선생님 어떻게 알았냐 하고, 심지어 말한 본인조차 신기해하며 선생님 진짜 똑똑하다고 감탄한다. 가끔 생각한다. 학생들이 밖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네 말을 못 알아들을 텐데, 나도 못 알아들은 척해야 했던 게 아닐까. 외국에 가서 내가 영어를 말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외국인들은 내 영어를 진심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이해할 마음이 없는 건지 때론 알아들었을 법도 한데 시종일관 어리둥절 표정을 지어 자존심 상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서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 선생님, 살이 몇 개예요?


"선생님, 제 살이 20이에요.", "저는 아직 살이 적어요.", "선생님은 살이 몇 개예요?"

처음 초급반에서 이런 류의 문장을 들었을 때, 몇 초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바로 눈치챘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를 말할 때 '한 살', '두 살' 이렇게 숫자 뒤에 '살'을 붙이니까 영어의 개념으로 이것이 'age'라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나이가 적어서...'라고 말하고 싶거나 상대방의 나이를 묻고 싶을 때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부류의 문장이 창조된다. 급기야 얼마 전 만난 학생은 내 나이가 궁금했는지 "선생님, 살이 몇 개예요?"라는 문장을 만들어 냈다. 소리만 들으면 '살이 찌다'의 살이 생각나지만, 이제 경력이 쌓인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나이가 궁금해요? 비밀이에요!" (나이를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2. 이 년에 왔어요.


"땡땡 씨, 언제 한국에 오셨어요?" "저는 이 년에 왔어요. 이 년 3월에 왔어요." 이 년이라니... 이게 사실 한국말의 어떤 욕과 소리가 비슷해서, 자칫 잘못하면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알아듣고 대답한다. "땡땡 씨, 올해 한국에 왔어요? 올해 몇 월에 왔어요?"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오만 가지 규칙을 외운다. 어순도 규칙이고 어미의 활용도 규칙이고 동사의 변형도 규칙이다.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지난주, 이번 주, 다음 주의 패턴을 익힌다. 그리고 자신 있게 활용한다. 지난 년, 이번 년, 다음 년으로... 그래서 종종 "지난 반 친구예요." "지난 년에는요." "이번 년에는..." 이런 활용을 한다. '년'이라는 발음이 약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나는 학생들이 제발 이 실수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3. 염색이 무슨 색이에요?
이 표현은 사실, 나도 올해 처음 들었다. 듣자마자 '오~ 신박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는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이 합리적 추론을 한 것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의 규칙이라면! 그렇다면! 염색은 무슨 색인가?! 이렇게 창의적인 학생이라니, 수업 중이지만 나는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4. 두 번 답 가르쳐 주세요.


외국인이 늦게까지 헷갈려하는 게 숫자다. 숫자에 대해 일, 이, 삼... 의 체계와 하나, 둘, 셋... 의 체계를 혼용하는 한국이라니, 어느 때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와 언어가 비슷한 일본 학생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지만, 외우다 볼펜을 던지며 포기하는 학생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왜, 시계 읽는 법은 하이브로드 방식으로 '한 시 삼십 분'이라고 읽는 것인가!

그 연장선에서 오늘 시험 문제 확인 중 일어난 일. "선생님! 두 번 답 가르쳐 주세요." "아~ 이 번(2번) 답이요? 이 번 답은~"


한국어를 가르친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똑똑해진다. 그래서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심지어 외국인 학생들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버벅대고 있으면, 가서 한국인에게 통역도 해준다. 신기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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