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가르친 학생의 미래가 궁금한 어느 날.

by Agnes

#1. 아시아계 학생이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했고, 사람을 찍는다고 했다. 한국의 유명한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중이었고, 지금도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을 찍는다고 하길래, 처음에 나는 패션 쪽 사진을 찍는다는 줄 알았다. 내 짧은 식견에 사람을 찍는다니 예쁜 사람만 떠오른 것 같다.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샘솟았지만, 제일 궁금한 건 그 학생의 한국어 실력이었다. 학생의 한국어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었는데, 수업은 한국어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영어로 이루어지는 수업도 아니고 100%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100%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괜찮냐고 물으니, 사진이니까 괜찮다고 했다. 사진에 대한 전문 용어들은 정해져 있고, 이론이 아니라 실기 수업 위주이니 괜찮다고 했다. 초급 한국어를 배우는 반이었기에 그 이상의 이야기는 나눌 기회도 없었지만 나눌 방법도 없었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내 자리에 작은 엽서집이 놓여 있었다. 다른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 그 학생이 놓고 갔다고 했다.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 결과물인데, 자신을 가르친 선생님들께 주고 싶었다며 놓고 갔다고 했다. 엽서를 들춰 보며 순간, 뭉클한 마음과 함께 황홀에 빠졌다. 학생이 찍은 사진에는 한국에 와서 살아가는 자국민들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노동하는 그들, 한국의 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그들, 때론 웃고 있는 그들, 때론 지쳐있는 그들. 학생은 르포르타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같은 반 학생 중 기자 출신이었던 다른 학생이, 그 학생의 사진이 참 좋다고 아련한 눈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찍는다 길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아련함을 다루는 작가였다.


엽서집을 잘 받았다고, 너무 좋았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예전 출석부를 찾아보니 다행히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 학생에게 연락이 닿을지 안 닿을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이메일 주소로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이 너무 좋았고, 감동받았고, 너의 앞날을 응원한다고. 계속 계속 응원하겠다고.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가끔 르포를 찍는 학생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한 학기에 약 50명, 1년이면 약 200명. 이런 규칙으로 외국인 학생들을 만난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수많은 그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추억해 본다.



#2. 한국이 그저 좋아서요


왜 한국어를 배우세요? 모든 외국인 학습자가 듣는 질문이다. 인터뷰의 단골 질문. 앞으로도 한국에서 마주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받을 질문. 그리고 지금까지 수십 번도 더 대답했을 질문. 3년째 한국에 있고, 팬데믹 기간에도 노동하며 공부하는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언제까지일지 예정할 수 없지만 계속 한국에 살 학생이었다.


"왜 한국어를 배워요? 왜 한국이 좋아요?"

"선생님. 저는 그 질문이 제일 싫어요. 저는 그냥 한국이 좋아요. 그래서 여기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거예요. 언제까지 살지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계속 살 것 같아요. 이유 없어요."

아마 내가 했던 수 천 번의 질문에, 내가 들었던 수 천 번의 대답 중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모든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듯이, 모든 결과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어쩌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이 '어쩌다 보니'라는 말을 조금 일찍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똑 떨어지는 답을 할 수 없을 때, 그냥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말하고 싶을 때, 한국 사람이 자꾸 있지도 않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물어 댈 때, 저 말을 하라고 해야겠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얼마나 홀가분할까. 얼마나 저 대답이 마음에 들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인생에 있어 10주란 매우 짧은 시간이고, 하루에 길어야 2시간, 그 두 시간도 개인 수업이 아니므로 15명 남짓한 학생 모두와 하나하나 교감을 나누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그래도 10주라는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있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까지는 생각이 확장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때 그 순간, 그때 그 광경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은 소멸하므로 잊지 않도록, 가끔 이렇게, 적어 놓아야겠다.


이렇게 또, 내 일상을 쓸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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