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엄마가 아니야

한국어 선생님이지

by Agnes
주차장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차를 오래 타야 하니 지금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한 다음,
내가 종신 재직권을 따는 날을 상상했다.
그날이 오면 '난 네 엄마가 아냐.'라고 쓴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출근할 생각이었다.
호프 자런, <랩걸> 172쪽 중

책 랩걸의 메시지는 이건 결코 아닌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살짝 후련했다.

호프 자런은 대학에 있다.




열아홉 또는 스물 나이에 타국에, 여기 한국에,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학생들을 보며 나는 감탄한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저렇게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까. 딱히 직업으로의 연결 가능성을 고려한 것도 아닌데 단지 배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돈과 시간을 내어 도전하는 그들을 보며 진심으로 경탄한다. 처음에 학생들을 보며 (노동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울 목적이라면 왠지 다들 (얼마간은) 부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이 세계에 들어와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부자는 어디건 개인의 문제이지 집단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 게, 부유함과 국적과의 연관성은 일반화하기가 어렵다. 여기도 저기도 빈부격차. 빈부격차는 어디나 크기 때문이다. 힘들게 돈을 모아 온 학생이건 부모님한테 도움을 받아 온 학생이건 내게는 모두 주체적으로 보인다. 자기 삶을 설계하는 그들. 나는 상상하지 못 했던 삶이다.


하지만 열아홉이라는 나이와 스물이라는 나이, 그 언저리의 나이란 아직 많은 게 미흡한 나이다. 그러니 (우당탕탕) 소란스럽고 그래서 찬란한 나이. 가끔 그들의 눈물을 본다. 불규칙적이고(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다소 모험과 무리를 반복하고(술이나 구경이나 새로운 음식들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팬데믹과 각종 질병과 날씨의 변화 등). 현실은 엄마 없는 일상이다.


공부가 아니라 돈을 벌러 왔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일하는 곳의 특성상 사실 일하러 온 학생들을 많이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간혹 가르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언젠가 불법 노동으로 경찰서에 다녀온 학생을 본 적이 있다. 취업 비자가 아니라 학생 비자로 일하다가 경찰서에 다녀온 학생이었다. 공장에서 몸으로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은데, 아마 적발되어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던 것 같다. 경찰서에 다녀오느라 수업에 늦은 학생은 울었는지 눈이 젖어 있었고 오랜 시간 경찰서에 있었는지 얼굴과 차림새가 고단해 보였다. 수업에 늦어 송구스러워하는 학생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밥은 먹었어요?

순간 눈과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둘 다 말을 할 수 었었다.

밥은 먹었냐니. 너무나도 한국사람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후 학생이 하는 말

아니요. 괜찮아요. 죄송해요 선생님.

진짜, 눈물을 삼키며 하는 말.

나는 그날 쉬는 시간에 학생을 불러 간식으로 싸 온 두유와 빵을 건넸다.




한 번은 반 구성원의 대다수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한국에 온 학생들이었다. 한국 나이로 하면 스물이 되어야 하겠지만, 나라마다 학제와 나이가 다르니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열여덟 열아홉이 수두룩했다. 아시아 학생이 많았던 학기이고, 나도 같은 아시아 사람이니 외모로 인한 장벽이 낮아 다소 과하게 서로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다. 겨울이었고, 감기에 걸린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춥다는 학생들에게는 재킷을 입혀 주고 아프다는 학생들은 보건실로 보내고 배고프다는 학생들에게는 초콜릿도 가끔 쥐어주고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말했다.


여기에, 한국에, 엄마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있어요. 괜찮아요.


'앗... 아이고 얘들아, 우리가 역할 놀이에 너무 과몰입한 것 같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은 근태가 너무 안 좋은 내 담임 반 학생들에 대해 얘기하던 중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왜 미안해요. 선생님은 엄마가 아니잖아요." 그때 뭔가 깨달았다. 아, 내가 너무 과몰입했구나. 나의 역할은 한국어 선생님이지.




그러고 나서, 그 이후부터,

다소간 나는 자유로워졌고, 내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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