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일한다는 것

캠퍼스 부심

by Agnes

회사에 다닐 때 나는 17층에서 일했다.

통유리고 층이 높아 뷰가 좋았다. 이른 아침 햇살 맛집이었고 저녁노을이 예뻤고 야경이 예뻤는데, 1초의 시간도 내려다보며 상념에 젖을 틈이 없었다. 그때도 SNS가 있었고 아이폰을 사용했었는데, 그 흔한 사진 한 장 찍어 남기질 못했다. 퇴사하기 전 언젠가 한 번, 비 온 후 노을이 정말 예쁠 때, 팀원들과 넋을 놓고 노을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창문도 열리지 않는 고층 빌딩에 갇혀, 그 기막힌 야경을 바라다볼 생각조차 못하고 새벽 출근과 야근을 반복하며 살았다.




나는 현재 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첫 수업을 하러 왔을 때 계절은 9월이었다. 약간 더웠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계절. 적당히 따스하고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캠퍼스를 오가며, 공강 시간에 강사실에서 캠퍼스를 내려다보며, 비로소 나는 내 시간이 적당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팬데믹 동안 꼬박 2년, 온라인 수업을 했다. 내 교실에 가서 혼자 모닝커피를 마시고, 혼자 컴퓨터를 보고 인사하고 수업하고, 혼자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점심을 먹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었고 종종 회의도 했지만, 어느 날은 사람의 실물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퇴근한 날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가끔 동료 교사를 만나면, 복도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사실 나는, 진정으로 절망적이고 우울하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에 캠퍼스를 내려다볼 수 있으니까. 수업하며 종종 맑은 하늘이 보이니까. 퇴근 전 초록 초록한 캠퍼스를 산책하면 되니까. 다만 찬란한 청춘들이 없는 텅 빈 캠퍼스가 마음 아팠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비가 오는 날도 캠퍼스가 주는 아련함과 풋풋함은 많은 절망을 다소간 만회해 주었다.




팬데믹 와중에 친한 친구가 학교 근처로 온다고 하길래, 나는 어서 빨리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마침 날씨가 적당히 좋은 봄이었고 아직은 닫힌 공간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게 많은 제약이 있었던 때였다. 나는 학교 안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내가 자주 가는 벤치로 친구를 안내했다. 조금만 나가면 대학가의 번화함을 느낄 수 있는 맛집도 많지만, 그보다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캠퍼스를 만끽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학교가 곧 직장이어서 이 좋은 풍경을 매일 즐기지만, 친구는 그렇지 못할 것 같아서.


학교 곳곳에 내 아지트가 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가끔 토끼가 출몰하기도 하는-작은 오솔길, 주차장으로 갈 때 약간 돌아가면 나오는-학교 안에서 사는 잘생긴 고양이가 낮잠을 즐기는-계단 길, 들어가 앉으면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운동장과 본관 사이 어느 곳. 언젠가 내 아이가 학교에 왔을 때 내 아지트 몇 곳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여기가 엄마의 아지트야.', '이 길이 엄마가 점심 먹을 때 다니는 길이야.', '여기는 엄마가 퇴근길 운전하기 전에 잠깐 앉아 책 보는 곳이야.'




대학에서 일한다고 하면 생각 나는 직군은 교직원 또는 교수이다. 하지만 모든 곳이 그렇듯이 대학에도 많은 직군이 존재한다. 비록 신분이 변변찮지만 대학에서 일한다는 것, 그것은 내게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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