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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29. 2022

어머니는, 호기심 천국

오호, 그래?

천식을 이기는 호기심



33년생이신-이제 곧 91세가 되시는-내 어머니께서는 호기심이 많으시다. 어머니가 나이에 비해 정정하신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끊임없는 호기심인 듯하다. 친정엄마가 그러시는데, 본인이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사람이 나이가 정말 정말 많아져 돌아가시기 전이 되면 아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지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궁금한 것 투성이신 걸 보면, 아주 반가운 시그널이다.


어머니는 천식이 있어서 바로 앞 화장실만 다녀오셔도 숨을 몰아쉬신다. 현관 바로 앞 차에서 내려서 거실까지 걸어온 후에도 한동안은 숨을 가쁘게 몰아 쉬셔서, 과연 운동이라는 게 가능한 걸까, 병원에서는 집 안에서라도 걸으라고 하는데 그건 본인들도 어렵다는 걸 알면서 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행 때도 그랬다. 펜션 현관문 바로 앞에 차를 세웠는데도, 거기서 펜션 거실까지 걸어오시느라 매우 힘드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점심을 드시고 텔레비전을 보시고 자식들이랑 회포를 푸셨다.


어머니가 거실에 그렇게 그림처럼 앉아 계시는 동안 나는 넓은 펜션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가족이 많아 우리는 2층짜리 독채 펜션을 구했고, 화장실도 많고 방도 많고 주방은 어디 수련회에 왔다 싶을 만큼 커서 동선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이다. 2층에 설치된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조카들 영화를 보게 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아니, 숨이 차서 화장실도 힘겹게 가시는 분이, 나선형 계단을 올라와 2층 복도를 지나서 이 끝방에 나타나시다니! 우리는 정말 놀랐다.


어머니, 여기까지 오셨어요? 왜요, 뭐 필요하세요?
응, 구경하러 왔지. 아주 방이 곳곳에 많구나.


깜짝 놀라 따라나가니, 세상에나 어머니는 구경을 하러 오셨다고 했다. 집이 아주 좋다며, 이렇게 멋지게 지어 놓고 세를 받아 먹구 살다니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며, 이방 저방 문도 열어 보고 '여기는 화장실이구나', '여기도 화장실이구나', '콤퓨터도 있구나' 만족스러운 구경을 하시고는, 조심조심 조심성 있게 난간을 붙잡고 내려가셨다.



월급은 누가 주는고?



우리 어머니는 내 직업을 아주 잘 아신다. 아마도 시누이들에게 들은 듯한데, 외국 사람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정말 힘들 텐데 그 어려운 일을 한다며 아주 기특해하신다. 아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머니를 매일 만나는 요양보호사님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매일 듣고 계실 것 같다. 어머니는 종종 물으신다. 몇 명을 가르치는지, 목은 안 아픈지, 점심은 도시락을 싸 다니는지 아니면 밖에서 사 먹는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지 운전을 하는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매번 물으시고 나는 매번 대답한다.

그런데 이 여러 가지 질문 중 가장 재밌었던 질문은 이거다.


에미야, 근데 니 월급은 누가 주냐?
네???
학생들이 걷어서 줘?


아..... 난, 소리 내서 웃었다. "아니요 어머니, 학교에서 줘요." "오호, 그래?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받아서 주나부다?" 나는 대답하면서 상상했다. 매 달 한 번씩 학생 중 한 명이 돈을 걷어서 나에게 주는 상상을. 뭐, 학생들이 낸 돈으로 내가 월급을 받는 게 맞긴 하지만.


내 어머니는 뉴스도 경청하신다. 열다섯 살 손주가 갈 군대는 이제 2년도 안 되게 짧아졌다는 것까지 알고 계시고, 노인연금이 10만 원 오른다는 것도 나보다 먼저 아시는 분이시다. 지난달에는 노인연금 오른다고 그랬는데 통장 찍어봤냐고 물으셔서, 그제야 나는 뉴스를 찾아봤다.


반가운 호기심.

이쯤 되면 내 어머니를 90세 중 가장 호기심 많은 분으로 인정해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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