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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Dec 12. 2022

33년생 셀럽,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1933년생, 2022년 현재 90세다. 내가 아는 (살아 있는) 여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나의 아이와는 75년 차이가 난다. 거의 한 세기다.


내가 결혼할 즈음 내 친구들의 시부모님은 모두 연세가 60세 전후였다. 그때 내 시어머니의 나이는 무려 75세였기 때문에,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 나이가 '매우 많다'는 것을 인상 깊게 기억했다. 지금 내 친구들의 부모님들의 나이는 70-80세 사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 어머니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로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잊지 않고 꼭 우리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친정 가족들은 항상 "할머니는 잘 계시니?"

내 친구들은 "시어머니 건강하시지?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셔?"

이제 내 직장 동료들도 "선생님 이번 명절에 시어머니 뵈러 가시죠?"

(할머니 옷 전문) 옷가게 사장님도 "시어머니 명절 선물 사러 왔구나!"


모시고 살지 않는데도 이렇게 깊게 우리 어머니는 내 삶에 스며들었고, 내 지인들에게 이렇게나 존재감이 있다.


가끔 보면 우리 엄마, 아빠에게조차 어머니는 사돈이 아닌 별도의 캐릭터로 존재하는 것 같다. 어머니는 실제로 내 외할머니와 나이가 같으신데, 외할머니는 한참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사돈의 존재를 그냥 집안의 큰 '어르신'으로 인지하는 것 같다. 자기 딸의 시어머니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으신 것 같다. 아프다 하면 어쩌냐 안타까워하시고, 건강해지셨다 하면 쾌차하셨음을 기특해하신다(기특하다는 단어는 어린아이에게 사용되는 단어임을 잘 알지만, 나는 종종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기특할 때가 있고,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이상하지 않다).


같은 맥락으로 이제 브런치 작가님들도 우리 어머니의 존재를 눈여겨 봐 주신다. 브런치 작가님들과는 서너 줄 댓글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지만, 서로의 글을 읽고 지내다 보니 서로 이해가 매우 깊다. 어쩔 때는 친한 친구나 매일 보는 동료보다 더 많은 서사를 공유하는 기분도 든다. 지인들과는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숨기거나 돌려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아마도 나 혼자 쓰는 글들은 매우 솔직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매우 솔직한 내 글을 꾸준히 읽는 사이라면 바닥까지 아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동료가 책을 하나 추천해 줬는데 윤이재 작가님의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책 표지를 보고, 난 우리 어머니가 거기 앉아 계신 줄 알았다. 색연필로 그린 예쁜 그림이, 슬픈 이야기를 결코 슬프지만은 않게 기대감을 주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손녀가 쓴 일기 같은, 소설 같은, 르포 같은 이야기였는데, 슈퍼우먼께서 살아 계셨다면 우리 어머니랑 친구 하시면 참 좋았겠다 싶었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쓰는 삶에도 등장한다. 내 첫 브런치 북 2권에서 90세 주인공이 돼 주셨고


https://brunch.co.kr/brunchbook/my-old-lady

https://brunch.co.kr/brunchbook/my-old-lady-2


그 옛날 언젠가 샘터에 실린 내 글에서도 82세 주인공이 돼 주셨다.


https://naver.me/5Rthskd4


며느리의 글을 위해, 정말 열일 중이시다.


언젠가 어머니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 꼭 두 손에 쥐어 드리고 싶은데, 어머니는 글을 모르신다.

그래서 꼭 전면에 어머니 얼굴을 넣어 드려야겠다. 그림이어도 좋고 사진이어도 좋다.


아무튼, 이 정도라면 우리 어머니는 진정한 셀럽이 아닌가.

나는 셀럽 매니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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