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비비기 전에는 참 보기 좋다. 색색의 재료들이 옹기종기 밥 위에 올려져 있는 게 귀엽기도 하고 먹음직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숟가락을 들고 비비면서 그 모양새가 다 흐트러지고 나면,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밥과 재료가 뒤섞여 엉망으로 보인다.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은 엉망인 내 방과 내 마음속을 닮은 듯도 보인다.
나는 지금 감정적으로 몹시 엉망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가족과의 지긋지긋한 불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대한 혐오, 나를 향한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에 휘둘려 불안한 마음. 지쳐버린 몸과 마음에 기다렸다는 듯 차오르는 무력감이 내 안에 꼴사납게 뒤섞여 있다. 며칠째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뜬눈으로 서성였다.
이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뭐라도 해야 할 텐데.
이대로 또다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기로 했다.
나는 이 다정한 단어가 참 좋다.
엉망이 된 몸과 마음에 햇빛을 쬐어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감동적인 글귀를 읽고,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에도 다녀왔다. 나를 위한 작은 선물도 주문해 두었다. 이제 맛있는 걸 먹으면서 배를 든든하게 채우면 어지러워진 마음을 정리할 힘이 날 것이었다.
문제는, 입맛이 없다는 것이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과자부스러기만 조금 먹었을 뿐.
배는 점점 더 고파지고, 기운이 빠지기 시작하니 애써 띄워놓은 기분이 실시간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요리할 마음도 없고.
배달앱에서 뭘 시켜 먹고 싶지도 않았다.
밖에 나가 외식할 생각도 의욕은 더더욱 없었다.
마음이라는 배가 벌써 반쯤 가라앉은 듯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위급상황에는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빠른 조치가 필요한 법이다.
냉동실을 열어 냉동 블루베리를 꺼내 작은 그릇에 담았다. 거기에 견과류 한 줌을 넣고, 산양유 단백질 가루와 플레인 요거트를 각각 두 스푼 정도 넣어준다.
(삶은 병아리콩이나 렌틸콩이 있다면 추가해 줘도 좋다)그리고 이 모든 재료가 잘 섞일 수 있도록 비벼준다.
간단히 블루베리 비빔밥이 완성되었다.
밥이 안 들어갔는데 이게 무슨 비빔밥이야!라고 물으신다면, 매일 아침밥으로 먹고 있는 음식이니 밥은 밥이지. 그렇게 내 멋대로 블루베리 비빔밥이라 부르기로 정했다고 답을 할 수 있겠다. 블루베리 요거트라고 하기엔 요거트의 비율이 너무 낮아서 적합하지 않고, 블루베리 범벅이라 칭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범벅은 어쩐지 죽에 더 가까운 이미지니까. 여러모로 고려해 보았을 때, 블루베리 비빔밥, 블루베리 비빔이라 명명하는 것이 적합하다 할 수 있겠다.
계량하거나 썰거나 가열하는 조리 과정이 없이 그냥 한 그릇에 넣고 휘적휘적 비벼낸 간단한 음식을 입 안에 넣어줬다. 반쯤 해동된 블루베리의 아삭함, 고소한 견과류, 산양유 가루와 섞여 맛이 좀 더 진해지고 산미는 부드러워진 요거트가 입 안에서 흩어진다.
과하지 않게 배를 채우면서, 자극적이지 않고, 산뜻하고 속 편한 맛이다. 예민하게 곤두서 있던 신경이 느슨하게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외부의 물리적인 상황이 위급할 때엔 119, 112를 비롯한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하면 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에 위기가 닥쳐올 때 즉각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생각 끝에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지 정했다 해도, 내 마음이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타인이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결국 내 마음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고 신속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오늘은 블루베리 비빔밥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대단히 멋진 일을 해낸 것도 아니고, 단지 끼니를 간단히 챙겼을 뿐이지만. 어려움에 빠진 마음을 구하기 위해 뭐라도 해낸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려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 나는 그것을 ‘나를 지키는 힘’ 또는 마음 구조대라 칭한다. 이 구조대는 아직은 힘도 약하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하지만 계속해서 지지해 주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내 마음이 또다시 엉망이 되고. 무너져도. 거뜬히 구해낼 수 있는 용맹한 구조대가 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본 [히어로는 아니지만]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머리를 스친다.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지고도 누군갈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힘들어하고 아파했지만 결국에는 힘을 내고 일어나 여주인공을 구해내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며 끝이 났다. 그는 마블 영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히어로는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낸 영웅이었다.
살다 보면 정말 히어로의 구조가 필요한, 견뎌내기 어려운 날들이 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줘요.
구해줘요.
간절히 바랐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선 영화나 드라마처럼 초능력을 가진 남주가 뿅!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주인공은커녕 약해진 나를 업신여기고 공격하는 빌런들이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내가 영화 속 엑스트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초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구해주길 기다려야 하는 역할을 맡은 단역이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내 삶에 가장 많이 출연하면서 중요한 인물은? 바로 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주연배우의 외모나 스펙이 마음에 차지 않아도 교체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이 주인공으로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끌어나가야 한다. 배우들이 첫 주연작을 끌어갈 때, 자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지. 인터뷰를 통해 어렴풋이 본 적이 있다. 신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베테랑인 배우들도 연기 고민을 하고 흥행에 대한 압박감에 늘 시달린다. 그래. 초짜인 내 인생이 버거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나온 말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역할에 따라오는 고난과 역경의 무게를 견뎌내야 재미있는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이다.
주인공은 늘 뭔가 활약을 하니까. 나도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블루베리 비빔으로 위기를 막아냈잖나. 별 거 아닌 일이라도 계속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약하고 능력도 없어 보이는 나라는 캐릭터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점점 성장해서 히어로가 되어 내 마음을 구하는 멋진 스토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