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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 Jul 02. 2024

아빠를 위한, 상추 비빔밥


오늘은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다. 엄마가 안 계신 틈을 타서 아빠와 나는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했다. 엄마는 돼지고기를 싫어한다. 집안에 고기 굽는 냄새가 배는 것도 불편해하신다. 엄마 때문에 집에서 삼겹살을 못 구워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싫다는 사람 앞에서 먹기엔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기회였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부녀는 신나게 삼겹살 파티를 할 것이다. 밖에서 사 먹는 삼겹살도 맛있지만, 집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의 맛도 각별하니까.


퇴근한 아빠가 씻고 계신 사이,  나는 집 앞 시장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아파트의 상가 앞 길에는 매일 오후가 되면 시장이 선다. 해가 지기 전인 이 시간대가 가장 북적거린다. 과일집, 건어물집, 떡집을 지나면 야채를 파는 곳이 나온다. 상추를 파는 곳만도 서너 곳이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가장 싱싱해 보이는 상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뭐 드릴까?”


“상추요.”


“얼마치?”


“쪼금만 주세요.”


“쪼금? 얼마나?”


“음…. 천 원어치요.”


비장하게 원하는 바를 말하고. 긴장한 채로 아주머니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시장에서의 상추 천 원어치란 계절에 따른 상추 시세와 사장님의 기분에 따라 그 양의 변동이 몹시 심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과연 얼마만큼의 양이 담길 것인가.


-덥썩


상추를 움켜쥔 사장님의 손이 검은 비닐봉지로 쏙 들어간다.


음. 저 정도면 딱 좋겠군.


-덮썩


“어. 어? 사장님. 너무 많아요.”


“에이. 많긴 뭐가 많아. 금방 다 먹어.”


기어코 한 줌을 더 집어넣으신다.

할랑할랑하던 검정 비닐봉지는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상추가 꾹꾹 눌러담겨진 봉지를 받아 들며 나는 티 나지 않게 작은 한숨을 쉰다.


‘이걸 누가 다 먹는다냐.’


 예전엔 가격대비 무조건 많이 받는 게 이득 아닌가 하고 마냥 좋아했지만, 다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음식물이 생기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며 많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뭐든 적당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거래는 대체로 낙장불입. 거래가 끝났으면 신속하게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북새통에서 지켜줘야 할 매너다.

휴일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같이 밀리는 시장길에서 벗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정육점에 들러 삼겹살 한 근을 구매하고 발걸음을 재빨리 옮겨 집으로 향한다.


아빠는 아직 욕실에 계셨다. 이른 새벽부터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오신 아빠를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밥상을 차린다. 상추를 씻고 고추와 마늘, 쌈장을 준비한다. 배추김치와 파김치를 꺼내고 밥을 뜬다. 국이나 찌개는 없다. 아빠와 내가 여는 삼겹살 파티의 엔딩은 대체로 라면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빠, 상추 엄청 많아.”


그러니 많이 많이 먹어야 해.

내 말을 들은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아빠는 상추랑 쌈장만 있어도 한 끼 뚝딱이야.”


그렇다. 아빠는 상추를 좋아하신다.


이걸 안 것은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우리 부녀가 함께 생활 한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었으니까.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는 게 아주 많다.


엄마는 호불호가 몹시 명확한 편이고, 특히나 불호인 것에 대한 거부감을 격하게 표현하는 성향이라 엄마의 기호는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좋아하는 게 뭐냐 물으면, 그런 거 없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하신다.

그래서 처음엔 진짜 아무거나 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와 시간을 보낼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만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도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구시렁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엄마랑 똑같이 까다로운 사람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기호와 취향이 없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그걸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말하고 싶지 않거나.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리라.


아빠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홀어머니와 누나, 네 명의 동생들이 있었고. 집은 가난했다. 아빠는 큰아들이니까 가족들을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며, 미성년자일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일하셨다. 선수까지 할 정도로 잘하고 좋아했던 배구도 내려놓아야 했고,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포클레인 일을 시작하셨다.

전국의 오지 산골과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또래도 없이, 아는 사람도 없이. 매번 낯선 어른들 틈에서 쭈뼛거리며 새벽부터 일을 하고, 해가 지면 피곤에 지쳐 잠들고, 밥은 현장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 했던 시간이 아빠에겐 삶의 대부분이었다. 한 현장 일이 끝나면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일의 반복. 현장의 특성상 외부와는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하셔야 했다. 언젠가 아빠와의 대화에서 취향을, 호불호를 따지는 것 자체가 호사스러운 일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야만 했던 아빠의 삶이 나게엔 서글프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내가 미대입시를 준비할 적, 우리 집의 재정 상황은 좋지 못했다. 먹고사는 것도 힘들었으니, 미술학원비를 지원하는 것은 우리 형편에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달이 수십만 원의 학원비와 입시 특강을 위한 몇백만 원을 마련해 주시고, 학비가 비싼 사립대에 합격을 했을 때에도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집안 형편에 맞는 학교에 진학하라는 말 한마디가 없으셨다. 그땐, 그냥 아빠가 나를 사랑해서 응원해 주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를, 나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빠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족하지도 않았고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길러주셨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부모님의 양육 아래서 나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취향과 호불호를 잘 아는 어른으로 자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안다.


이제는 내가 아빠를 알 차례다.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많은 것들을 함께 하며 아빠의 취향을 찾아내려 한다.


   

냉장고엔 아직 상추가 많이 남아 있다.

내일은 아빠가 좋아하는 상추로 비빔밥을 만들어야지.

싱싱한 상추를 잘라 진간장, 고춧가루, 설탕, 참기름, 식초를 넣어 겉절이를 만들고, 계란프라이와 김가루를 넣고 밥도 한가득 넣어 비비자. 김치도 넣을까?

차돌박이도 구워서 아빠의 숟가락 위에 얹어 드려야지. 그리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빠의 취향에 대한 단서를 좀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아빠의 청춘을, 시간을 찾아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취향을 찾아가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찾아내서,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행복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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