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무 Jun 13. 2024

냉장고 털이를 위한, 감자볶음 비빔밥

지난 주말에 비가 왔었다. 친구가 감자전을 부쳤다며 먹음직스러운 사진을 보내왔다. 빗소리를 닮은 기름 튀기는 소리가 나는 바삭한 감자전에 도토리묵무침까지 해서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는 말에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다음날 당장 로컬푸드에 방문해 감자와 양파를  왔다. 막상  오고 나니 감자전보다 감자볶음이 먹고 싶어 져서 감자를  썰었다. 내가 만든 감자볶음은 매번 포슬포슬 부스러졌다. 식당에서 나오는 감자볶음처럼 약간 아삭한? 맛을 내고 싶었는데. 얼마  친한 교회 권사님께서 감자 종류에 따라 식감이 달라서 부스러 졌을 거라고, 임시방편으로 감자채를 소금에 절였다가 볶으면 원하는 식감을 내는데 도움이  거라고 팁을 주셨던 것이 기억났다.


이럴 수가! 내가 만든 감자볶음 중에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데 좀 많이 만들었던 것일까? 두 끼 정도 신나게 먹었는데도 감자볶음이 남아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감자볶음 털이를 위한 비빔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릇장에서 하얀 도자기 그릇을 꺼냈다. 본래 면기로 나온 제품이었기 때문에 크기가 넉넉해서 만능 다용도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다. 밥을 비벼먹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냉장고를 열고 감자볶음과 애매하게 남은 김치를 그릇에 탈탈 털어 넣었다.  위에 뜨끈한 밥을   담고, 고추장을 꺼내 반스푼 정도 !

약간의 설탕과 후추. 참기름을 쪼로로록.

조미김을 바샥바샥 부셔 넣고 신나게 비벼주었다.


“아, 너무 탄수탄수한데?”


밥이랑 감자만 넣어서는 영양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 단백질도 넣어줘야 했다. 계란프라이를 넣고 맛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5분 만에 완성한 것 치고는 제법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감자의 맛을 느끼기 위해 간을 세게 하지 않은 비빔밥은, 감자의 은은한 맛을 해치지 않는 부드러운 맛이었다.




오래전, 대학시절 알고 지냈던 지인들이 전주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내 고향을 방문한 이들에게 전주에 대한 좋은 기억을 전해주고 싶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전주비빔밥 전문점으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비빔밥도 밑반찬도 모두 짜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던 기억이 난다.


‘이정면 적당한 간인 것 같은데. 뭐가 짜다고 난리람? 저런 입맛으론 밖에서 뭘 먹어도 다 짜겠네. 밥 집 소개한 사람 민망하게 대놓고 불평까지 할 건 뭐야. 진짜 무례하네.’


그냥 그러려니.

 싱겁게 드시나 보네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도  말에 발끈해서 속으로 혼자 씩씩댔던 것이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리석었다고. 뒤늦은 반성을 했다.


 적당한 간이라는 건 나의 기준일 뿐이었는데. 각자의 취향과 입맛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엄선한 맛집에 대한 혹평을 들은 것이 기분 나쁘고 속상하다는 감정에 매몰되었었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했을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누구에게나 좋은 말만 듣고 싶어 전전긍긍했다. 착한 아이 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리라.


누군가 나에 대해 별 뜻 없이 하는 말에 의연하지 못하고 집착하며 밤이 새도록 곱씹어가며 힘들어했다.

남들의 한 마디와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던 나는 결국 신경쇠약, 불안장애에 시달리다 대인기피를 하게 되었다. 몇 년 동안이나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둬두었다.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과도한 불안에 짓눌려 있었던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평생 동안 모두에게 사랑받고 좋은 말만 듣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계 3대 성인으로 꼽히는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에게 미움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그런 대단한 분도 미움을 받는다. 누구나 다 살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기 마련이다. 불평이나 미움 좀 받으면 뭐가 어때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힘들어했을까.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전보다는  민감하고 무덤덤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 나에 대한  이야기가 도는  들었을 , 예전처럼 모든 말을 수용해서 억지로 소화하려 드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말들을 탄력 있게 튕겨내는 방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그래? 근데 그래서 뭐.


뭐 어쩌라고.


그건 그 사람 생각이고. 그런 말에 어떻게 일일이 신경을 써.


날 싫어할 수도 있지. 그러든지 말든지.


수용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은 말들을 구분하고, 필요 없는 말들은 과감히 마음 밖으로 내다 버린다.


모두에게 좋은 말을 들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도 내다 버렸다.


내가 먹고 있는 감자볶음 비빔밥이 내 입에는 맛있지만, 누군가는 이것을 맛없다고. 싱겁다. 짜다. 너무 맛있다. 다양한 평을 내릴 수도 있겠지.


그럼 뭐 어때. 내 입에 맞으면 된 거지. 뭐 하러 남들의 평가에 신경 써, 이 말 저 말 다 신경 쓰다가 밥 맛 떨어지겠다.


예전보다 조금 덜 민감하고, 더 단단해진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소금에 절이는 팁 하나를 적용했더니 예전보다 나아진 내 감자볶음의 맛처럼, 마음가짐 하나를 바꾸면 내 인생도 전보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더는 불안에 나를 가둬 두지 말자고. 내 마음에 응원을 보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