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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 Jun 11. 2024

고양이를 위한, 참치 비빔밥


“집에 와서 애들 좀 봐줘!”


엄마로부터 sos전화가 걸려왔다. 본가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부모님이 모두 집을 비워 고양이들이 외로워하고 있으니, 어서 와서 그 애들과 놀아주란 말이었다. 백조로 지내고 있는 딸은 이럴 때 부르기 좋은 인력이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애들이 밥을 안 먹어.”


“왜?”


“유리 때문에 사료를 바꿨더니, 둘째랑 셋째가 입에 안 맞나 봐.”


유리는 14살이 된 할묘니다. 개만 키워왔던 우리 가족들에게 고양이의 매력을 알려준 첫 번째 고양이 이기도 하다. 내 눈에는 아직도 아가씨 같고, 애기같이 느껴지지만 고양이도 8-10세가 되면 어르신급으로 여겨야 한단다. 노견과 노묘는 사람처럼 나이가 들수록 소화력이 떨어지고 치아도 약해지기 때문에 사료를 바꿔줘야 하는데, 할묘니인 유리를 위해 바꾼 노묘용 사료 때문에 문제가 생겼단다. 할묘님인 유리는 맛나게 먹는데, 이제 겨우 세 살이 되어가는 새파랗게 어린 두 애송이 고양이들은 그게 영 입에 안 맞는 모양이었다. 사료 그릇 앞에 앉아 울면서 항의를 했다고 한다. 다시 사료를 주문했지만 내일에나 도착한다 하니. 엄마는 그동안 애들이 굶으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신다.


“하루정도는 맛없는 거 먹어도 돼.”


정규직 고양이 집사인 엄마가 부재중인동 안 임시 집사로 근무할 내 입에서 제법 매정한 말이 나왔다.

고양이를 싫어해서 저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내 핸드폰은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저장공간이 부족한 상태다. 우리 집 삼냥이들의 사생팬, 홈마 같다고 해야 할까.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말한다.


“오냐 고양이 후레 고양이 된다고!”


오냐자식 후레자식 된다는 말이 무섭게 와닿는 요즘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나랑 동생은 엄하게 혼내면서 키운 엄마가 고양이들에게는 매번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는 것이 심통이 나서 하는 말을 절대 아니다.(약간의 질투는 하고 있다) 우리의 작고 귀여운 털가족들을 곱게 키우고 사랑해 주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모든 응석을 받아주다 보면, 버릇없고 예민한 고양이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맨날 맛있는 것만 먹고살 수는 없어.”


동물도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늘 내가 좋아하는 것만 취하고 살 수는 없다. 일정한 강도의 자극에 항상 노출되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면 마냥 행복이 계속될 것 같지만, 그게 기본값이 된다면 우리는  이내 그것을 지루하게 느끼고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좋아했던 것들이 더 이상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퍽 슬픈 일이라 생각한다.


때때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과 그저 그런 것들을 접하며 다양한 강도의 자극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재미없게 만들기도, 힘들게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지나가고 찾아온 좋은 것들을 더욱 각별하게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오늘과는 다른 내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며, 삶에 대한 기대감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얘들아. 맛없어도 먹어야 해.”


그러면 내일의 밥이 더 맛있을 거야.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해지지. 행복은 가끔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것이다. 그러나 임시 집사의 깊은 뜻이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고양이들은 여전히 칭얼댄다.


“뿌애앵.”


“먹어.”


“후에에엥.”


“밥 내일 온대.”


“히야아아아앙!”


“뭐. 뭐. 뭐 임마! 이거밖에 없다고!”


엄마의 오냐오냐 속에서 자란 고양이는 만만하지 않았다. 고집 쎈 말썽쟁이 고양이는 지치지 않는 울음소리로 나를 닦달했고, 내 고막의 평화를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고양이 간식서랍을 뒤적이던 내 손에 통조림 하나가 잡혔다.


이걸 그대로 까서 줄 수도 있지만 어제부터 밥을 영 시원찮게 먹었다고 하니, 사료에 참치를 비벼주기로 한다. 맛있는 참치에 사료가 묻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섞어주고 세 개의 그릇에 나눠 담았다.


‘이거라면 잘 먹지 않을까?‘


의기양양하게 고양이를 불러본다.

유리야~ 둘째야~ 셋째야~!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 부른다고 신나게 바로 달려오면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 개지. 개야. 고양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결국 배달 서비스를 했다.


“참치 비빔사료 3 묘분 배달 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양이들은 치명적인 귀여움으로 결재를 퉁쳤다.

과연. 참치 비빔사료는 좋은 평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


놀라울 만큼 참치 맛만 보고 가버렸다. 좀만 더 맛을 봐줄 수는 없겠니?


남은 것은 참치 비린내와 줄어들지 않은 사료였다.

맛있는 것 + 맛없는 것 = 그냥저냥 먹을만한 것 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가 간을 볼 수도 없어서 뭐가 문제인지를 분석할 수도 없고…. 결국 비빔사료 전문! 고양식당은 오픈하자마자 폐업해야 했다. 역시 준비 없는 음식점 창업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주 고객층에게 외면당한 참치 비빔사료는 그 길로 엄마가 외부에서 운영 중인 건사료 전문 냥식당으로 배달되어 길냥이 손님들에게 무료 나눔 하게 되었다. 길에 사는 아이들은 잘 먹을 터였다.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풀 죽은 고양이들이 보인다. 배고프면 기운 없고 짜증 나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간식창고를 뒤져 츄르(고양이용 짜 먹는 간식)를 꺼냈다. 엄마한테만 애들 오냐오냐 한다고 뭐라 할 것이 아니었다. 나도 똑같네. 똑같아.


“이거라도 먹어라.”


이번에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둘째와 셋째가 달려와 챱챱챱챱-잘도 먹는다. 이거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너네 사료도 먹어야 해.”


 나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와작와쟉 까득- 사료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할묘니. 유리가 사료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묘생의 단맛 쓴맛을 얼추 다 겪어본 14년 차 묘르신의 품격이 느껴지는 우아한 사료 먹는 모습이다.

밥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줘서, 잘 뛰어다녀줘서 너무나 고마운 기특한 내 첫 번째 고양이. 지금처럼 아프지 않고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둘째, 셋째 이놈들아 보고 좀 배워! 맨날 화분 뜯어먹고, 도자기 깨고, 화장실 모래랑 사료 봉지 이빨로 물어뜯고 다니지 말고!


잔소리 섞인 말을 하기도 전에 츄르를 다 먹은 녀석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우다다 신나게 집 안을 뛰어다닌다. 이놈들아 뛰면 금방 배고파져.


“에휴. 엄마는 언제 오시려나.”


퇴근시간만을 기디라던 임시 집사에게 퇴근보다 배고픔이 먼저 찾아왔다.


“뭐 먹지?”


가성비 좋은 백반집도, 동네 돈까스 맛집도, 떡볶이와 김밥이 맛있는 분식집도 코앞에 있는데. 뭘 먹어볼까나~. 오늘 점심 메뉴는 맛있는 게 될까? 맛없는 게 될까? 밥이 맛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고, 맛이 없다면 다음번에 먹을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로 내일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쪽이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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