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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이야기

<그래서 악령의 이름이 뭔가>

by 조성현

과연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악령의 이름을 알아들은 이가 몇이나 될까. <검은 사제들>이라는 '전작'에서도 악령의 이름은 구마 의식에 있어 중요한 열쇠로 등장한다. 빙의된 악령의 이름을 불러 그를 지옥으로 돌려보내고 고통받는 아이를 구한다는 플롯은 두 작품 모두 동일하다. <검은 수녀들>에서 바뀐 것이라면 주요 등장인물의 성별 정도로, 이미 존재하는 뻔한 서사 위에 페미니즘이라는 소스를 부어 내놓는 방식을 택한 것 정도가 고작이다. 제목에서부터 기존의 <검은 사제들>에 '기대어' 만들었다고 천명하는 이 영화는, 여성 서사를 입히겠다고는 이야기하지만 정작 '남성 신부들의 이야기'에 의존하겠다는 모순을 안고서 시작을 하게 된다.


악령이 유니아(송혜교)에게 쏟아내는 말은 그야말로 '여성혐오'의 표본이라고 볼 법한 단어들뿐이다. '암캐'나 '더러운 것' 등 '한낱 여자'라며 아래로 내리깔아보는 시선으로 성적인 모욕을 연신 내뱉는다. 악령이니만큼 당연히 그러한 폭력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나, 문제는 유니아가 카톨릭 고위직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소파에 앉아 유니아를 맞는 이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한 남성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낱 수녀'인 유니아가 구마 의식을 한다는 점을 탐탁찮게 생각하며 이후엔 남성인 바오로 신부(이진욱)에게 그 권한을 넘겨주고자 한다.


이 부분에 있어 신자가 아닌 사람조차 신성모독으로 느낄 법한 포인트가 드러난다. 악령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 카톨릭 남성 카르텔이라니! 기존의 카톨릭 내부의 남성 중심 체계를 비판하는 것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모욕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유니아가 유의미하게 기존 남성 카르텔을 효과적으로 부수어내는 것도 아니다. 유니아가 과연 스스로의 힘으로 기득권을 타파하고 구마의식을 진행하였는가. 그녀가 구마를 실행하도록 만든 것은 악령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목도한 바오로의 조력이다. 과연 이것을 주체적인 여성이 기득권의 편견을 이겨내고 약자를 구원해내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바라볼 수 있는가.


악령은 수많은 저주와 악담을 내뱉지만 그 언어에서는 공포를 느낄만한 요소가 없다. 절반 가까이가 여성을 비하하는 말들이며, 이러한 종류의 언어에서는 '12형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강대한 악마의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강력한 악마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한심함보다는 공포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악을 쓰며 악담을 내뱉는 악령은 유니아의 도발에 휘둘려 그 한심한 악다구니만큼이나 한심한 방식으로 그의 이름을 뱉어낸다. 그러나 사운드의 문제인지 그 이름은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 설마하니 그 이름이 '카톨릭'은 아니리라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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