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대신 마음을 가르치는 엄마,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웁니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유식한 말솜씨가 있지도 않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예쁜 아이 둘을 얻었다.
예전엔 학식이 뛰어난 부모가 아이를 더 잘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변의 엄마들이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봐주고, 진로까지 이끌어주는 모습을 종종 마주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워킹맘이다. 아이 옆에 늘 있어주지 못하는 시간, 놓치고 지나가는 순간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도 하나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니,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의 말에는 그보다 더 깊은 집중으로, 더 따뜻한 눈으로 머물러 있으려 한다. 어릴 땐 아이들의 말이 두서없고 엉뚱할 때가 많았지만, 나는 그 시간조차 소중하게 여겼다. 말을 이어가느라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눈을 맞추며 끝까지 들어주었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의 말에 경청하면서 자주 질문을 던진다.
"경청은 나의 시작이고, 질문은 나의 대화법이다. 아이와 함께 자라기 위한 방식이다."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그리고 그 생각을 존중하기 위한 질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아이는 나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기쁜 일, 속상한 일, 친구와의 갈등, 공부에 대한 고민까지 아이의 하루가, 마음이, 생각이 고스란히 내게 흘러든다.
그런 아이가 고맙고, 그 아이에게 어떤 방향이 옳을 수 있는지 살며시 안내하는 부모이고 싶다.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함께 걸어주는 사람. 이제는 더 이상, 공부 잘하는 부모가 부럽지 않다. 내가 가진 방식대로, 아이에게 따뜻함을 주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피곤한 날, 마음이 복잡한 날엔 중간에 끊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의 말을 자른 적은 없다.
내가 원하는 부모의 모습은 이렇다.
아이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은 엄마.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아, 잔소리 대신 위로가 되는 엄마.
인생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따뜻한 울림을 주는 그런 엄마.
나는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다. 부족하지만, 사랑하는 방식으로.
"완벽한 아이가 아니라, 행복한 아이로 자라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