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에게 다가갔던 순간이었다.
우리의 신혼집의 이름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었다. 참 좋은 집주인부부가 주인세대에 살고 계신 빌라였다. 1.5룸의 작은 집이었지만, 그마저도 정말 행복했던 곳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집. 심지어 이름마저도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니, 그의 오지랖 아닌 오지랖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필리핀에서 쉐어하우스로 유학생활을 보냈던 그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좋은 경험이 많았다.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웃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사람 사는 냄새 가득했던 그곳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느껴지는 삭막함이 내심 마음에 계속 걸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가 살게 된 신혼집의 이웃들을 궁금해했다. 비록 쉐어하우스 만큼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웃들끼리 인사라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는데, 이런 빌라에서는 이웃끼리 인사하지 않고 남처럼 지나가버려야 하는 걸까.
그래도 무턱대고 인사를 할 수는 없으니, 그는 나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우리... 빌라 현관 앞에 게시판 하나 다는 게 어때?"
"응? 게시판???"
이게 무슨 소린가.
26살 평생 세입자가 빌라에 게시판을 붙였다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게시판은 뭐 하는 건데?"
"우리가 영향을 받았던 좋은 글귀들을 적어놓자! 사람들이 보고 좋은 생각,, 되돌아보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뭐.. 그래..."
그리고 그는 코르크 게시판을 하나 샀고, 열심히 자기가 좋아하는 문구들을 프린트해서 열심히 잘라 붙였다.
- 저희는 204호 세입자입니다. 좋아하는 글귀들이 있어서 붙여보았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는 메시지도 함께 붙여 놓았다.
'그래. 게시판 정도는 뭐.. '
당시의 나는 이웃에게 다가가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편이었다. 완벽한 타인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어쩌다 만나는 이웃을 보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인사할 타이밍을 보는 그가 신기했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여보, 지금 쿠키 만들어서 우리 카페에 두고 있잖아. 그거 우리 빌라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어때?"
"응? 그걸 어떻게 나눠줘?"
"문고리에 걸어두자! 메시지도 같이 적는 거야!"
"어... 어..?"
다시 말하지만, 낯선 타인에게 다가간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만든 과자를 문에 걸었을 때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먹어도 되는 건가 하면서 버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걸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온갖 걱정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다 듣고 그가 말했다.
"버리면 어쩔 수 없지."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는 호의를 베풀었고, 그걸 그냥 버리거나 불편해하면 우리가 잘 이야기해보면 돼. 그래도 불편해하면 그때 안 하면 되는 거고. 뭐가 문제야?"
그렇지. 맞다. 문제 될 건 없었다. 문제라면, 이렇게 해 본 적 없던 내가 지레 겁을 먹고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문 앞에 메시지를 담아 쿠키를 하나씩 걸어놓았다. 혹시 누가 문 열고 나오다 마주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다다닥 문 앞에 쿠키들을 걸고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쿠키를 가져갔을까 확인해 보고 싶어 문을 살짝 열어 확인했다. 쿠키들은 그 자리에 다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 지났을까. 궁금해서 다시 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던 그가 말했다.
"없어졌어! 없어졌어!"
"정말? 어디야? 정말 가져갔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 쿠키를 가져갔을 걸 생각하니 괜스레 두근거렸다.
다음날. 다다음날까지 우리는 문 앞에 쿠키가 사라졌는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게시판 앞에도 우리가 쿠키를 만들어서 집 앞에 걸어놓고 있다고 적어놓았다.
"한 번 더 하자."
그가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엔 쿠키를 달고, 가끔씩은 머핀을 달아 놓기도 하면서 조금씩 문고리에 과자를 걸어놓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윗집 소방관이 살고 계셨는데, 우리와 인사를 하게 되었다. 과자를 잘 먹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그 말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도 사람이다.'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를 때는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웃이란 존재가 얼굴을 마주 보고 인사를 하는 순간 인격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무표정으로 다니던 사람이 인사를 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걸 느끼는 건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하나씩 토대가 되어 지금 지니엄소사이어티의 모토가 되었다.
-지니엄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두근거렸다.
삭막하고 외롭다고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으로 다가가는 경험은 꽤나 특별했다.
그가 자신을 얻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제안한다.
"우리 집을 개방해서 홈카페를 하자!"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이젠 우리 집을 개방하자고?
"아니 여보 그건 좀 아니야. 솔직히 누가 남의 집에 들어오고 싶어 하겠어? 현관문 열면 바로 앞에 테이블 있어서 들어와서 어떻게 또 앉아? 자리도 없어! 누군지도 모르는 집에 굳이 들어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앉아서 이야기한다고? 그게 말이 안 돼!"
나는 놀라서 이야기했다.
"왜? 난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근데 진짜 한 사람이라도 오지 않을까?"
"이상한 사람이 오면 어쩌려고 그래!"
이 말에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얘기했다.
"여보 내가 다 지켜줄게!!"
"아니.. 그게 아닌... 하.. 나는... 모르겠다. 맘대로 해..."
그렇게 게시판에 우리는 공지를 하나 붙였다.
- 홈카페 합니다!
커피를 내려드리고, 직접 만든 디저트를 준비해 둘게요.
날짜와 시간을 적어 붙이고, 그는 신나서 커피 도구들을 집으로 가져와 브루잉 연습을 했고 나도 열심히 타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디데이.
열심히 집을 꾸며보았다.
예쁜 천도 깔아보고, 꽃도 말려서 걸어놔 보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조용한 빌라에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