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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bake_a_rest 쉼을 굽다. @brew_a_rest 쉼을 내리다.

by 쿠요

나의 첫 쿠키였다.

누군가의 레시피로 따라 보고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었던 투박한 과자.

유기농밀가루와, 유기농설탕을 굳이 굳이 고집하며 만들었던 과자였다.


동그랗게 만들고 싶어서 틀을 구하러 방산시장에 다녔고, 1cm 두께로 일정하게 자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서 늘 속상했던 나였다. 왜 이거밖에 만들지 못할까 축 쳐지다가도 이렇게라도 만들어 내는 내가 좋았던 그때 그 시절. 명확한 취미를 하나 가지고 있지 않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겨서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점점 베이킹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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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쿠키였다. 조금씩 조금씩 발전시켰다.


'더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스스로 연습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움직이려면 나는 혼자가 아닌 외부에서의 압력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일하고 있는 카페에 쿠키를 조금씩 만들어 두고 있긴 했지만 그걸로 연습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 랜덤박스를 보내주려고 합니다. 재료비만 받고, 원하는 것을 말해주면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주문해 주기 시작했다. 꽤 긴 시간, 꾸준하게 랜덤박스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보냈다. 다양하게 만들었고, 그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 별로였던 것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수량이 많을 때는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양이 적든 많든 지금 이 모든 것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베이킹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그중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의 과자를 먹어주는 친구들도 있다. 그때 응원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신혼집에서는 작업을 할 수가 없어서 매번 일이 끝나면 근처 있는 친정집으로 가 부엌에서 계속 베이킹을 했다.


"집이 아주... 난장판이야!!"

참다 참다 어머니가 한소리 하셨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는 딸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어머니는 뒷정리나 설거지를 도와주시곤 했다.


실력이 자라기 시작했다.

만들 수 있는 게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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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랜덤박스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남편은 커피에 빠졌다.

심지어 잠시 1박 2일로 놀러 갔던 워터파크에서 굳이 굳이 핸드드립 도구들을 챙겨가서 내려마셨으니까.

평일아침이어서 거의 사람들이 없었던 텅텅 빈 워터파크에 문 연 가게는 하나도 없었고, 마치 그곳을 전세 낸 것처럼 그는 가져온 커피도구들을 한가득 꺼내 그곳에서 커피를 내렸다. 심지어 원두도 갈아서 가져가면 향이 떨어져서 안된다며 수동 그라인더까지 챙겨갔다.


-드르륵드르륵


미끄럼틀을 타다가 갑자기 불려 가서 그가 원두를 가는 걸 쳐다봤다.


"마셔야... 하는 거지?"

"그럼!"

"근데... 꼭 지금 이 타이밍에 마셔야 하는 거야..?"

"이 맛이지!"


원래 커피는 이렇게 마시는 건가 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가방에 다 도구들을 챙겨서 다니는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커피를 내리는 걸 바라봤다.


바람이 불었다.

물에 젖은 몸이 살짝 추워졌을 때쯤 원두 갈린 향이 퍼지며 한 방울 한 방울 내려진 커피는..

정말 따뜻했다.


KakaoTalk_20250604_001607461.jpg 심지어 유리잔도 가져갔다. 세상에.

남편은 커피에 빠졌고, 나는 베이킹에 빠졌다.

이걸 통해 무언가 수익화구조를 내거나 상품화를 시키거나 전향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다.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그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쳐있는 마음을 쉬게 만들었다.


캐나다에서 캐런네 집에 있을 때 함께 만들었던 빵이 나에게 쉼이 되었듯,

문화센터 선생님네 공방에 가서 빵을 배우고 사람들과 나눠먹는 그곳이 나에게 쉼이 되었듯,

나도 누군가에게 쉼이 되어주고 싶다.


잘하지 못해도 의미 있고 싶었다.

그러나 의미 있기 위해서 잘하고 싶었다.


그걸 다짐하고 싶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의 이름을 정했다.

@BAKE_A_REST


나는 쉼을 굽겠다.

그런 나의 발버둥 치는 과정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그 역시 인스타 계정의 이름을 바꿨다.

@BREW_A_REST


쉽을 내리겠다.


우리의 이름은 앞으로 우리의 다짐이 되었다.

KakaoTalk_20250603_231626867_01.jpg 첫 남편의 인스타와 나의 인스타 닉네임




그가 제안을 했다.


"우리.. 이 빌라 사람들에게 과자 나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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