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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과탑에서 교사로, 강남학원강사로, 동네수학강사로

나를 둘러싼 껍질을 벗어가는 과정.

by 쿠요

결혼을 했다.


나는 여전히 방배동에 있는 수학학원에서 파트타이머 강사로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에 3번,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고등수학을 가르치는 법을 공부했고, 가르쳤다. 사교육의 현장 바로 한가운데였다.


서울 강남구 수학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표정은 행복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학원에 와서 계속해서 수학만 공부하고 밤늦게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가르치는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고등수학을 다 마스터한 중학생 아이는 머리가 정말 좋았지만 세상을 향한 염세적인 시선으로 가득 찼다. 수학문제가 풀리지 않아 손을 덜덜 떨던 중학생 아이는 하염없이 연필만 계속 깎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나는 수학을 좀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26살의 내가 스스로 의미부여를 해가며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에 내 시선은 좁았고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결혼을 했고 파트타이머로 있기에는 생활비가 부족하니, 풀타임으로 전환해야겠다는 생각. 서울까지 집에서 매일같이 출퇴근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집 근처 학원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 저녁이 있는 삶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고등수학이 아닌 초등수학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이 모든 생각들이 합해져서 나는 집 근처의 초등수학학원으로 근무지를 옮기기로 했다.


- 사교육의 중심지! 방배동 수학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라는 자기 합리화와 자존심까지 내려놓았던 순간이다.




하루는 대학 친구가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 후 대학원을 다니며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 친구가 물어봤다.


"언니는 대학원 안 간 거 후회하진 않아?"


후회라.

조금 생각하고 대답했다.


"언젠가.. 나와는 다르게 대학원을 가고, 대기업을 가고,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와의 격차를 심하게 느낄 때도 있겠지. 나는 결국 어디 작은 학원에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때 후회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모든 게 결국 내 선택이야. 그러면 받아들이고 책임지며 내가 그 순간에 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지 나는 나일 거야. 나랑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나한테 물었어. 자기는 청소부로 살아가도 된다고. 직업에 귀천은 없고, 무슨 일을 하든 그 안에서 자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거라고. 근데 그 말에 내가 선뜻 동의를 못하겠더라. 나도 말은 그럴듯하게 해 왔는데 진짜로 내 남편이 그렇게 살아간다고 하니까 겁이 났던 거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그런 나의 마음을 마주하고... 하나님께 많이 울었어. 누군가의 시선으로 나는 포기하고 패배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비로소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맞지 않는 옷들을 하나씩 벗어가며 진짜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카이스트를 다니던 나.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던 나.

사교육의 중심지 강남 수학학원강사라는 소리를 듣던 나.


그 모든 걸 하나하나 껍질을 벗을 때마다 나는 초라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나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시간들을 내가 겪게 하셨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 그 시간이 나에게 너무 필요했었다.



"동네 학원에서 수학 가르쳐요."


이 말이 편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나를 나로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갔던 수학학원은 원래 영어학원이었는데 새롭게 수학학원을 개설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원장선생님께서는 수학에 관련된 부분을 나와 다른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다 맡기셨다. 호기심도 많으시고 솔직하고 열정 있는 분이셔서 이곳저곳에서 수학학습 툴을 가지고 오시면 그에 대한 모든 관련 업무는 우리가 다 도맡아 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내 적응하고 새롭게 수학학원의 판을 짜기 시작했다.


학교와 방배동 학원에서는 중등과 고등 수학을 가르쳤다면 이곳에서는 유아와 초등, 중등을 가르쳤다. 그렇게 숫자를 처음 접하는 유아부의 교육과정부터 수능 입시 수학교육과정까지 전체적으로 보기 시작하니 수학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수학교육의 과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학 가르치는 게 재미있어졌다.


'아, 초등학교 5학년때 나오는 이 개념이 중등, 고등으로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아, 그때 가르쳤던 그 개념의 기본이 여기서부터 시작했던 거구나.'


수학 개념의 학습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어느 부분을 더 공부시켜야 하는 건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 그동안 애들 잘못 가르쳤구나.'


어쩌면 아이들에게 이제야 수학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꽤 기분 좋게 시작된 초등학원강사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때 남편은 카페교회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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