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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부족하지만 결혼을 했다.

중요한 건 결혼식보다 마음이었다.

by 쿠요

- 결혼은 돈이 많이 든다.


확실히 지금 결혼하면 돈이 더 많이 드는 것 같긴 하다. 식대는 말할 것도 없고, 예식장 대관료, 혼수 등 확실히 물가가 1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올랐다. 그러나 내가 결혼할 당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에도 결혼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들이 대다수였다.


집에서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없는 가난한 신학생과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파트타이머 강사의 결혼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더욱이 우리 집 역시 반대하다 이제 막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우리는 스스로 결혼을 준비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에게 있던 돈은, 내가 어릴 적부터 1000원 2000원 받은 용돈을 20년 가까이 모아 만들었던 3000만 원과 남편이 모았던 300만 원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가 막막했다. 우리가 정말 실제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가라는 막막함과.. 내가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결혼을 감행할 만큼 이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후자였다.


그리고 나는 그 확신이 있었다.

이 사람의 성격과, 이 사람의 조건, 이 사람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었다. 나와 그는 사람이기에 때때로 무너지고 서로에게 실망하겠지만, 우리 두 사람을 붙드시는 하나님께서 결국에 우리는 당신의 뜻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단순히 내가 감정적으로 치우쳐서인가라고 스스로를 계속 돌아봤다. 내가 멋모르고 합리화하며 선택하는 건 아닐까 수도 없이 돌아봤다. 그럼에도 결국 기도할 때마다, 말씀을 볼 때마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 이게 옳다면.. 저는 가겠습니다.'

그 확신으로 나는 선택했고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의 무게였다. 그리고 기꺼이 그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쉽진 않았다.

내가 실제적인 예산을 놓고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가 속상한 마음에 한 마디 하셨다.

"네가 팔려가는 것도 아니고.. 왜 너 돈 주고 결혼하니."


그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옳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는데, 이런 나의 애씀이 사실 무서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위로하셨다.


"선생님. 저는 두 사람을 다 알잖아요. 분명 고생스럽고 힘들겠지만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가실 것을 믿어요."


내가 사랑하는 교사이자 믿음의 선배인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 결혼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나의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이제 결혼을 실제로 준비해야 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집을 구해야 했다. 원룸이라도 좋았다. 그렇게 집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현재 지니엄의 건물주이자 부동산 중개업자인 실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때마침,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인 반전세 집이 있었다.


'어떡하지.'


가지고 있던 돈 3000만 원에서 2000만 원이 부족했다. 보증금 3000으로 하고 월세를 올려도 되는지 여쭤봤는데 그건 힘들다고 하셨다.


'결혼식을 못 올려도 되는데... 집이라도 해야 할 텐데.'


1.5룸의 처음 들어가자마자 이 집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곳. 들어갈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그 찰나, 남편이 있던 교회의 권사님께서 우리에게 보증금의 남은 돈을 해주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엄청난 사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지니엄이 있는 동네를 알게 되고, 신혼집을 구했다. 건물의 이름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었다. 11평 조그만 방에 우리 두 사람의 첫 보금자리가 마련된 셈이었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때 마련 되었던 전세금이 훗날.... 지니엄을 시작하는 초석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보신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하시더니 우리의 첫 침대와 장롱을 선물로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이제 남은 300만 원으로 예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사진 촬영은 전부 생략하고, 당시 막 파파라치 사진을 싸게 구할 수 있는 때였기에 5만 원으로 서울에 선유도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본식 촬영은 수정 없이 사진만 찍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고, 드레스와 메이크업도 35만 원으로 끝냈다. 예식장은 평일 (지방선거날)로 잡아 대관비가 무료였고 인터넷 다이렉트 카페에 가입해 열심히 포인트를 모아 부케와 헬퍼비용을 담당했다. 한복은 할머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한복을 입었고, 불필요한 혼수는 양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 생략했다. 그러니 정말로... 200만 원으로 예식 비용이 끝났고, 나머지 금액으로 신혼여행지를 잡았다. 그것도 남편이 예전에 필리핀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교회로 가는 것으로.


부족했지만 행복했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결혼식에서 우리는 축복을 많이 받았다. 식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더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합하는 게 더 중요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건이 좀 더 좋았다면, 좀 더 선택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을 테지만 우리는 자족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더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각자 살아가던 삶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내 나이, 26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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