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그가 살고 싶은 삶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몸이 많이 약해져 있던 상태라 그런지 꽤 많이 지쳤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뤄내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버거웠달까.
공대를 벗어나 교사로 살아가게 되면... 나는 정말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환상 속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로 교사가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왔던 키팅선생과 학생들과 같은 끈끈한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안았지만,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혹독한 헌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체감하지 못했었다. 좋아 보이는, 감동스러워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가 나의 삶에 진심이어야 하고 헌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결과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는 했지만 실력이 없었다. 되고 싶은 바람은 있었지만 간절함은 없었다. 그러니 실력이 있고 간절함이 있는 그녀를 봤을 때 나는 더 이상 교사는 나의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거다.
큰맘 먹고 방향을 틀었기에 스스로에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감은, 방향을 틀었음에도 나의 길을 찾지 못한 현실 앞에서 무력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렇게 의욕이 없는 사람인가.'
딱히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런 나의 곁에는 연애 중인 지금의 남편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 앞에 헤매었던 반면, 그는 언제나 확고했고 목표가 있었다.
"바르게 사는 게 내 꿈이야."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그는 그렇게 말한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전하는 삶.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이끄시든, 청소부로 이끄시든, 어떤 직업이든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갈 거야. "
그는 신념이 확고했고,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갈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딱히 무슨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할까를 정하지 못하던 나에게 깊은 안정감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가 말하는 삶을 정말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게 내 꿈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교사 2년 차 때, 선배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선생님은, 어떤 비전을 갖고 계세요?"
그 질문이 참 어려웠다. 거창해야 할 것 같고, 무언가 대단한 게 있어야 할 것 같던 참 어려운 비전이란 단어. 그 단어 앞에서 나는 조금 힘겹게 대답을 했다.
"저는요... 지금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목사가 되길 꿈꾸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사람이 꾸는 꿈을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그게 제 비전이어도 괜찮을까요?"
그 대답을 들은 선생님께서 씩 웃으시면서 대답했다.
"멋진 비전이네요."
교사는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으니,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우선 돈을 벌자. 그가 사는 삶을 내가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데, 그럼 먼저 돈을 버는 게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 몸이 약해서 무리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금만 일하고 적당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타이밍에 들어왔던 학원 파트타이머 제안은 꽤 솔깃했다.
주위에 말할 명분으로는 방배동에 있는 수학학원에서 일하며 수학 강사로의 역량을 집중해서 길러보겠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꾸는 꿈을 보조할 수 있으면 그게 나의 보람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의 사교육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래가 창창하던 카이스트 학생이, 나는 이 일로는 지속가능한 일로는 살지 못하겠다고 도망쳐 나와 교사로의 꿈을 안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 나는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만났다. 고민 끝에 나는 교제 중이던 남편의 꿈을 함께 꾸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으니 너무 열심히 무언가를 할 힘은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파트타이머 강사로 갔다. 그리고 그때의 나의 비전은 그가 꾸는 꿈을 함께 꾸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기에 그와의 결혼을 꿈꿨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바로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 우리 집안의 만류로 3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강사로 근무지를 바꾸던 그 시기가 약속했던 3년의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