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까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던 그 시간 동안 늘 그는 내 곁에 있었다.
우리는 2013년 5월 2일. 연애를 시작했다.
끝이 보이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가 연애를 한다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맞추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던 셈이다. 아니, 그냥 내가 마음을 먹고 준비되기까지 1년이 걸린 셈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바로 그는 우리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해도 될지 나를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는 소중한 딸이 마음이 힘들어져 몸이 더 아파질까 봐 어쩔 수 없이 허락하긴 했지만, 마음속에 그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가득해서 만나는 것을 불편해하셨다. 그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는 못했지만, 허락을 구하고 싶다는 뜻은 전했다.
'좋다는 데 지금 안된다고 난리 치면 오히려 더 만나려고 하겠지.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자.' 아마 그 마음으로 마지못해 허락하셨을 거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그는 대신 큰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도 지금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형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
큰오빠는 그가 올곧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만났던 컨퍼런스의 주최팀이 큰오빠였기 때문에 이미 그의 성향과 성품을 큰오빠는 짐작하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만나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내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고 조언을 해줬던 사람이 큰오빠였으니, 우리가 만나기 시작할 때 이미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그의 허락을 구하는 장문의 문자에 응원의 답을 보내주었다.
-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쁜 사랑 잘해봐. 효선이 뿐만 아니라 너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이야기한 데로 주님 안에서 행복한 교제되기를 기도할게.
내 마음의 확신을 갖고, 주위 사람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시작된 우리의 연애. 그 연애가 시작하자 그는 1년 안에 바로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에 큰오빠가 제동을 걸었다.
- 3년. 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때도 서로 같은 마음이면 그때 결혼을 준비하렴.
그러니 이제 나에게는 어머니를 설득해야 하는 시간 3년이 주어진 셈이었다.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꾸준히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마음인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지 계속 이야기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걱정과 염려를 다 들어드렸다. 그리고 안 좋은 이야기는 양쪽 모두에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효선아.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래."
어머니는 늘 걱정을 담아 이야기하셨다.
"응 엄마. 아마 나도 아직 가보지 않아서, 잘 몰라서 이러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엄마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잖아.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복이다라고 이야기 하잖아. 이 사람은 조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건 없지만.. 마음의 중심이 정말 하나님께 서 있는 사람이야."
24살 딸이 하는 이야기들이 어머니는 얼마나 기가 찼을까. 세상물정 모르고 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러나 나 역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쫓아서 계속해서 어머니를 설득했다.
연애를 하는 기간 동안 매번 이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그에게 실망한 때도 있었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적도 있다. 언제나 굳건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낼 거라 생각했던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무기력함에 빠지기도 했다. 다른 것 하나 보지 않고 이 사람의 강한 마음 하나만 보고 연애를 결심했던 나는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가르쳐 주신 거라 생각한다. 어느 날은 끊임없는 절망 속에 있다가 다음 날은 그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가 없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의 마음의 근거들을 찾아갔다. 그렇게 스스로를 정리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게 바로 일기였다.
꾸준한 설득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도 그동안 교사로, 강사로 끊임없이 방황하지만 내 삶을 선택해 가겠다고 발버둥 치는 딸의 곁에 그가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을 보셨다. 딸의 성격과 생각이 차츰 바뀌어 가고 성숙해져 가는 것을 보셨다. 그러니 3년이 다 되어 가는 그때, 완전한 환영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를 사랑하는 가족으로 받아들이고자 마음을 굳히셨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카페를 하고 있는 교회 사역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26일. 우리가 만난 지 1000일이 되던 날이었다. 카페 마감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위해 갔던 그날 저녁 나는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