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던 질문이, 이거다 싶은 질문이 되었다.
다시 나의 본업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나는 수학 강사였다. 작은 동네 학원에서 이제 막 숫자를 배우는 아이들부터 초등, 중등 아이들에게까지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출근 전 오전에는 틈틈이 베이킹을 했고, 오후부터 이른 저녁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햇수로 4년. 무려 4년 동안 수학을 가르쳤던 셈이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4년 동안 나는 고등 입시수학부터 중등, 초등, 그리고 더 내려가 이제 막 숫자를 가르쳐줘야 하는 영유아 아이들까지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수학을 처음 배우는 순간부터 입시수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학의 교육과정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 지금 초등학교 3학년 때 곱셈을 처음 배우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곱셈의 개념은 결국 덧셈에서 시작되고 그 덧셈은 완전히 숫자를 처음 배우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거였구나.'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내용이 앞으로 고등 입시 수학까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가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하니, 가르치는 게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수학 지도서에 수학의 교육적 가치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전제는, 수학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의 가치에 대해 설명할 때, 내 눈에 들어왔던 가치가 바로 "심미성"이었다.
심미적 가치. 수학은 원리나 법칙에 내재된 아름다움이 있다.
이전까지는 나만 알고 있던 수학의 가치였다. 수학이란 종이 위에 우주를 써 내려가는 학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수학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수학을 계속 공부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나에게는 보이는 이 수학의 심미성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그건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유아, 초등, 중등, 고등 전 과정의 교육과정을 가르쳤던 경험은 수학"교육"의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그 지도를 보고 따라가는 여정에서 어느 부분을 보충해 줘야 하는지, 어디를 체크해줘야 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아이들에게 수학이란 세계의 아름다움을 좀 더 전할 수 있다는 마음에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창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광기 어린 눈으로 가르치다 보면 늘 아이들에게 뾰로통한 목소리로 이런 질문이 나왔다.
"배워서 뭐해요! 어차피 실생활에서 쓰지도 않는데!!"
그리고 그 질문에 난 늘 말문이 막혔었다. 수학의 실용적 가치는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처음에 교사가 되어 고등학생들을 가르쳤을 때도 이 질문은 늘 나왔다.
"미적분은 배워서 뭐해요..?"
그렇지.. 맞지..
뭐라고 대답해야 했던 나는 공대생이었던 기억을 살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했다.
"전자피아노를 만들 때 말이야... 지금 이런 미적분의 원리를 써서, 이렇게 음을 입히고..."
뭐라도 대답하기 위해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던지.
나도 알았던 거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미적분은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는 걸. 그런데 어쩌겠나.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은 해줘야지. 수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너희가 배우는 게 그래도 무의미하지 않아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신입교사의 발버둥이었을 뿐이다.
고등학생들에게 들었던 질문은 중학생, 초등학생들에게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조차도 수학을 살면서 많이 쓰진 않는데... 그러게.. 실용성을 따지면 너희는 대체 수학을 왜 배워야 할까.
그러던 내가 베이킹을 하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잠깐만. 이거 함수잖아?'
베이킹을 접하고, 레시피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수학의 개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 재료 하나하나가 다 변수야. 이 변수들이 하나씩 들어가서, 함숫값을 만들어내. 와, 이거 일차함수네?'
'이건 어떤 관계지? 정비례인가? 반비례인가?'
'이거.. 약수네!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
'닮음비다!'
신이 났다.
이전에 수학은 실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나도 모르게 수학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실제로 수학의 개념과 매칭시키는 건... 정말로 이제 수학교육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숙제를 하기 싫고 문제 풀기도 싫은 한창 반항심 많은 갓 들어온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그날도 투덜투덜 거리며 말했다.
"아니, 배워서 뭐에 써요! 실생활에 쓰지도 않는걸요!"
이때다.
"아니, 쓰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선생님이 어제 베이킹을 했는데, 오늘 너한테 가르쳐준 최소공배수를 이렇게 브라우니를 만드는데 썼어! 그리고 아까 우리 배운 약수는 이렇게 계산할 때 썼었단다!"
"....."
나도 이제 할 말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날 수업을 정말 잘 듣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