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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를 가져보자.

목포로 가자

by 쿠요

1.5룸 작은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우리 가게를 가져보고 싶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언젠가 하고 싶어서 상상으로 하는 말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던 나는 놀란 토끼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뭘 어떻게 준비해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 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그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21살이었을 때 하늘나라에 가신 나의 아버지는 평생에 신학공부를 하고 싶어 하셨다. 늘 아버지를 괴롭혔던 할아버지의 상식 밖의 행동들을 다 견뎌내시며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가슴 한 켠에 묻으실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하고 싶으신 것보다 해야 하는 일들을 묵묵히 선택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가끔씩 본인이 하지 못한 일들에게 대해 말씀하실 때 눈빛 너머로 보였던 감정은.. 깊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을 간직한 채 돌아가실 수밖에 없던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느껴질때면 마음 한켠이 늘 아려왔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눈에서 슬픔을 보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남편의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기꺼이 그 눈빛을 지켜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래. 어렵고 두렵고 무섭더라도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계신다.


"그래. 그러자. 가게를 가져보자. 어디로 해볼까?"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목포로 가자!"



?????



시댁 가족들에게는 목포에 애물단지 같은 건물이 있었다.

관리도 되지 않고, 융자도 많고, 팔리지도 않는 그 건물.

우리는 용인에서 가게를 구하기에는 돈이 없으니 그 건물 1층에 우리가 들어가 건물 관리도 하면서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그의 생각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응.. 우리가 카페를 하려면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


마음이 몹시 심란해졌다.

나만 보고 용인에 왔던 우리 엄마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애초에 이 결혼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딸이 그렇게 원하기도 하고, 또 딸의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큰맘 먹고 허락했던 우리 엄마에게 대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이런 고민을 결국 말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나의 1순위는 결국 남편이 되어야 했다. 그게 내가 앞으로 꾸려가야 할 가정의 원칙이었기에.


"엄마. 사실.. 요즘 우리는 목포에 내려가는 걸 고민하고 있는 중이야."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매우 많이 상심해하셨다.


"너는.. 엄마를 버릴 생각이니?"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차올라 이야기했다.


"엄마. 같이 갈까? 아니, 엄마가 결국 너무 힘들 것 같으면 가지 않을게. 나도 엄마를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남편의 의지와 어머니의 감정의 조율이 필요한 시간.


당장에 어차피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기존에 남편이 일하고 있던 곳에서도 꽤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단번에 빠질 수 없었고, 결국 빠져나오는 것도 가게의 사장님과 충분히 잘 납득될 수 있는, 그래서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적절한 때가 필요했다. (실제로 그는 나중에 나오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1년 동안을 파트타임으로 함께 일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을 다 하고 나왔다. 때문에 지니엄의 오픈이 1년이 늦어졌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오히려 우리에게 굉장히 필요했던 시기가 되었다.)


'아직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력을 준비해 가면 된다.



수학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동시에 학교에 파트타임 강사로 잠깐 일하고 있던 때였다. 오전에 수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업 중이라 당연히 전화를 받지 못했고,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전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으셨다.


'왜 전화했지..? 이따 다시 전화하지 뭐.'


평상시에도 통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어머니랑 친하게 지냈던 교회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세요?"

"효선샘. 어머니가... 쓰러져서 지금 병원에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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