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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나의 두 번째 기둥이 흔들렸다.

엄마와의 시간은 4개월이 남았다.

by 쿠요

놀라서 그대로 달려갔던 병원. 어머니는 병실에 누워계셨고 나를 보자 왈칵 울음을 터트리셨다. 그 옆에 자리를 지켜주셨던 전도사님은 잠시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셨다.


"배가 갑자기 너무 아픈데, 너는 전화를 안 받고. 병원에 와서 보호자를 쓰라고 하는데, 나는.. 보호자가 없어."


아이처럼 엉엉 우는 어머니를 그대로 끌어안아 토닥이며 그 자리에서 나도 펑펑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 전화받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왔어. 엄마 보호자 내가 할게."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등을 토닥여주며,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효선아. 엄마 맹장이 터진 것 같다고 하는데.. 엄마 느낌은 좀 달라. 조금, 심각할 것 같아. 엄마 몸은 엄마가 잘 알잖아? 왠지 암일 것 같아."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닐 거야. 그냥 맹장이 터진 거일 거야.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리고 맹장수술부터 잘 받자. 괜찮을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일 없을 거라 되뇌었던 건 그럴 일이 없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먼저 받아들이고 마주하기에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우선 현실을 먼저 부정하고 보았다. 그럴 리 없다고.

어머니는 그런 나의 말을 들으며 조금 쓸쓸하게 웃으셨다.


저녁에는 남편과 오빠들이 다 모였다.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를 위로했다.



다음날, 맹장수술이 잘 끝났다. 그리고 참 좋았던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결과를 말해주셨다.


"맹장 수술은 잘 끝났어요.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면서 뭔가 보이는 게 있더군요. 그 부분의 조직을 좀 떼어냈는데, 이건 조직검사를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별 거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제 생각에 이건 좀 큰 병원을 가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느낌이 좋진 않네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래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모르는 거야..'


어머니는 서울아산병원에 결국 검사를 받으러 가셨다.



2016년 늦가을의 어느 날. 오전에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 학원수업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차를 탔다. 이미 학교에서는 수업이 시작되었고, 주차장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작은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효야. 음. 잘 들어. 어머니 난소암 4기래. 앞으로.. 길어야 4개월이래."


.......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차에 앉아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차 시동을 켤 수도 없었고, 어딘가로 전화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주님.'


기도를 시작하는 그 한 마디에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에게서.. 엄마마저 데려가지 마세요. 해드린 것도 없고, 받은 사랑을 갚지도 못했는데 4개월이라니요. 아빠가 가고, 이번에 엄마마저 이렇게 데려가시면 제 세상은 무너질 것 같아요. 제발.. 저에게 1년이라도 허락해 주세요.'


엉엉 울면서 같은 기도를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갔을까. 차 안에서 나는 모든 감정을 다 쏟아내었다. 이러다 내 몸의 모든 물이 눈을 통해 다 빠져나가겠구나 싶을 만큼 울었다. 그렇게 울고 정신이 다시 돌아올 때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최선을 다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겠다.


약해지고 무너지는 마음을 끊임없이 스스로 타이르고 되뇌며 차에 시동을 켰다.




남편과 결정했다.

목포를 내려가지 않기로.

카페를 하는 것도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지금은, 엄마의 투병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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