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간병생활과 새로운 시작

이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보자.

by 쿠요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의 앞으로 시간이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가족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항암치료와 난소제거수술을 받기로 결심하셨다.


수술에 앞서 어머니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를 할 때마다 가득했던 머리숱이 한 움큼씩 손아귀에서 빠져나갔고 갑자기 찾아온 낯선 변화에 어머니도 나도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강한 분이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 안 되겠는지 결국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 밀고 오셨다.


"효선아. 엄마가 예쁜 모자를 사 왔어. 이제 모자를 종류별로 써봐야지."


"응. 근데 우리 엄마가 모자가 또 잘 어울리지!"


그렇게 우리는 예쁜 모자를 모았고,


"효선아. 엄마가 머리를 다 밀었잖아? 근데도 쪼그마한 머리털들이 빠진다? 진짜 신기해."


"진짜! 신기하다. 머리털이 정말 쪼끄만 해!"


그러면서 어머니와 장난치듯 웃기도 했다.


그러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나타나 계속 구토하며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줄 때면 나도 함께 울었다.


몇 차례의 항암치료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4시간 동안 길게 이어졌던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슬슬 풀려가자 밀려드는 통증에 어쩔 줄 몰라 병실 안에서 크게 울부짖던 어머니를 보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입술을 힘껏 깨물으며 두 손을 꼭 잡고 어머니를 다독였다.


"우리 엄마 잘했다. 정말 잘했다. 고생했어."




난소를 제거하면서 실제로 배 속을 열어보니 정말 다행히도 몸 전체로 암세포가 아직 전이되진 않았다. 재발의 위험성이 높아 주기적인 확인이 필요했지만, 어머니의 수술은 정말 잘 끝났다.


그리고 혼자 투병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어머니를 집에 혼자 두기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나는 이제 막 신혼이었던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가 괜찮다면... 엄마랑 집을 합치고 싶어. 혼자 지내시게 하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려."


그런 나의 고민에 남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자."


그게 남편에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고 어색할 텐데 장모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니. 그것도 우리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돼서 우리 집으로 모시는 게 아니라 장모님 댁에 들어가서 사는 처가살이를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음에도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괜찮아. 어머님이랑 시간 같이 많이 보내자."


그 말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고 딱 1년 만에 신혼집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집을 합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어머니는 다시 혼자 살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던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어머니의 투병으로 목포로 내려가 가게를 차려보자는 생각이 전부 멈춰진 후로, 남편은 못내 아쉬웠는지 근처에서라도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장에 카페를 하기는 힘드니 차라리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월세가 싼 작업 공간이라도 마련해서 로스터리를 하면.. 지금 일하고 있는 카페에 원두라도 납품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는 로스터리로 사용할 공간을 찾아보았다.


그럼 로스팅을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로스팅부터 시작해서 커피도 전반적으로 다 배울 수 있는 과정을 수료를 해볼까 고민하다 생각보다 너무 비싼 수업료에 섣부르게 정규교육을 들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거 교육 들을 돈으로.. 차라리 로스터기를 사서 콩을 볶는 게 더 연습이 되지 않을까? 교육을 듣고 나면 어차피 로스터기도 사야 하는데.... '


그렇게 생각으로 가득하던 중, 결국 우리는 어머니와 집을 합치게 되었고 신혼집 전세 보증금으로 돌려받게 된 5000만 원으로 로스터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보증금을 빼서... 가게를 하는 게 맞을까?"

처음 해보는 일에 늘 두려움이 앞서던 나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도전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달리 시작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그런 무모한 생각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싶을 만큼, 그는 확신에 차 있었고 분명히 가보고자 했다. 또다시 반짝거리는 그의 눈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가 뭐래도, 나는 그의 아내였으니까.


"납품할 수 있는 택배 상하차만 들어올 수 있으면 돼. 상권, 위치는 상관없어! 주차가 가능한 저렴한 곳으로 가자!"


그렇게 어머니의 투병생활과 함께 집을 합쳤고, 동시에 그의 꿈을 실현해 줄 어떤 공간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곳을 만났다.


keyword
이전 28화26살. 나의 두 번째 기둥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