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전세자금으로 로스터리를 시작했다.

지니엄 커피 로스터리

by 쿠요

어머니의 난소암 4기 소식을 듣고, 수학학원에서 일하던 나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남편은 다른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카페를 오픈해 보려던 계획을 전부 멈췄다.


홀로 남은 어머니의 곁에 끝까지 있고 싶었기에 우리는 1.5룸의 작은 신혼집에서의 생활을 1년 끝내고 어머니와 함께 집을 합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걸까.

정말 감사하게도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들었던 어머니는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중간중간 항암치료로 힘들어하셨지만 그래도 밝고 씩씩하게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편안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우리 역시 해보고 싶었던 도전을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에게 좀 더 우리가 꿈꾸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신혼집 전세자금을 빼서 우리는 근처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썩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조건도 괜찮았지만 마음이 흔쾌히 끌리는 곳이 없었달까.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우리가 신혼집으로 살았던 동네가 생각이 났다. 언덕이었지만 조용했고 깨끗하며 나무도 많았던 곳. 첫 신혼집에서 홈카페를 하던 기억이 추억으로 뭉게뭉게 피어났기 때문인지 우리는 우리 신혼집을 연결시켜 주셨던 부동산을 다시 한번 찾아가 가게 자리를 여쭤보았다.


"어, 마침 우리 건물 1층이 비었는데. 한 번 볼래요? 사람이 많이 다니진 않는데 작업실이 필요한 거면 괜찮을 것 같아."


부동산 실장님께서 소개해주셨던 바로 그곳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건물 1층.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도로 양 옆에는 예쁜 나무길이 있었고, 그 길 끝에 마치 숨겨진 보석처럼 예쁜 조경을 가진 아파트 앞에 탁 트인 1층 공간이 나왔다. 산바람이 솔솔 불고, 저 멀리 새소리가 들리고. 마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비밀의 화원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으로 우리는 그 장소에 단숨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지금은 이게 통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가벽을 세워서 반으로 나누고 세를 주려고 해요. 그럼 좀 덜 부담스러울 거예요."


설렜다.


가벽을 세우고 사용하다가... 언젠가 이 공간을 다 쓰게 되는 날도 있지 않을까? 5년 뒤에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할까?




가게 자리를 보고 온 며칠 동안 그 자리가 계속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입지적으로 정말 좋지 않은 곳인 건 안다. 지나가는 길도 없어서 정말 이곳에 오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 아니면 지나가다가 보지도 못하는 곳. 심지어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말 그대로 객사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근데... 어차피 우리 카페가 아니라 로스터리를 하는 거잖아. 원두 납품을 하는 로스터리 작업장이 필요한 건데, 그럼 괜찮지 않을까?"


그 장소가 주는 특유의 아늑함과 동네 분위기가 주는 고즈넉함이 온종일 마음에 남아 우리는 행복회로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던 거다.


"그래. 이왕 작업실이 필요한 거면 언덕이면 어때! 택배차가 올 수 있기만 하면 되지. 우리가 맘에 드는 곳으로 하자."


그렇게 우리는 2017년 6월. 40평 공간을 반으로 나눈 20평이 안 되는 그 공간을 계약했다.





... 고생길의 서막이 올랐다.




가게를 계약했지만 당장 모든 작업을 올인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남편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바로 발을 빼지 않고 파트타임으로 서서히 근무시간을 조정해 갔다. 그 당시에는 그런 남편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계약한 가게가 자리 잡기 위해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시간을 들이는 건지 답답하기도 했다. 내가 답답함을 토로할 때면 남편은 늘 한결같이 말했다.


"그게, 나의 신의야."


신의는 무슨 놈의 신의.

투덜투덜거렸던 20대의 나는 지금에서는... 그의 결정에 끄덕인다. 답답하고 바보 같아 보였을지도 모르는 그 시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가 되었고, 그 덕분에 남편의 근무지에 계시던 사장님과 사모님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분들이 되었으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쫓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를 배웠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어차피 당장에 로스팅을 하는 실력이 없었던 그였기에 바로 수입을 만들어 낼 수가 없으니 연습을 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의 전세금 5000만 원을 꺼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커피 장비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정말 천정부지로 비쌌고, 그 와중에 남편은 자신이 로스터리를 한다면 2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로스터리니까 당연히 있어야 하는 로스터기.

그리고 그의 커피를 향한 애정을 더 샘솟게 만들어줄.... (욕심이 더해진) 커피머신.


보증금 1000만 원을 내고, 1000만 원의 작은 사이즈의 로스터기를 샀다. 그리고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를 끊임없이 설득해서 결국 우리는 그 당시 (그리고 지금도) 가장 비싼 커피 머신 중 하나인 슬레이어 에스프레소 머신 1구를 1500만 원에 구매했다.


큰 장비 2개를 사고, 보증금을 내고 나니 남는 돈이 없었다. 그때부터는 발로 뛰기 시작했다. 반셀프 인테리어..라고 들어보셨는지.




자, 이제 사업자 등록을 해야 했다.


"우리.. 이름을 뭐로 할까?"


온갖 사전을 다 뒤져가며 그가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이던 그의 눈이 어느 한 단어에 머물렀다.


"이거 어때?"



- 지니엄. (XENIUM)

An Offering From Host to Guest.


선물.

주인이, 손님에게 주는 선물.


"여보 근데... X로 시작하는 단어는 읽기가 좀 어려운데.. 괜찮을까?"

나는 역시나 걱정을 한가득 안고 말했다.


"괜찮아. 그 이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보자."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우리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이 쉬어가길 바라는 공간.

우리가 정말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따뜻한 선물 같은 공간.


"여보 근데 로스터리라며. 그냥 지니엄 이라고만 하면 사람들이 카페인지 로스터리인지 모르잖아. 지니엄까지는 뭐 그래... 오케이인데... 지니엄커피로스터리 라고 하면 안 돼? 좀 직관적이게 말이야!"

내가 물었다.


"근데 나는 지니엄이라는 이름을... 단순히 로스터리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아. 지니엄은 지니엄이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주위의 모두가 이름이 어렵다며 말렸던...... 지니엄이 탄생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니엄의 첫 시작은... 카페가 아닌 원두납품을 목적으로 하는 지니엄 커피 로스터리였다.

**** 지니엄의 부제는, 마음이 쉬는 자리이다.







진짜.. 아무 것도 없었다. 커피머신. 로스터기. 그리고 주워온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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