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을 미루고 몇 달 동안 계속 볶은 원두를 버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시작되었다.

by 쿠요

보증금을 내고 로스터기를 사야 하고 머신도 사야 하니... 나머지 남는 돈으로 인테리어를 해야 했다. 천만 원 남짓 남아있는 그 돈으로 최대한 아껴보자 다짐했다.


몸으로 뛰는 거야.


그렇게 호기로운 첫 시작. 바로 기존 공간에 있던 바닥 데코타일을 뜯어내는 일.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 하며 호기롭게 데코타일을 뜯던 커요는 3시간에 걸쳐 전체 공간의 1/8 정도를 뜯었을 무렵,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병원비가 더 나올지도 몰라..?"


두 차례의 큰 허리수술을 해서 늘 허리를 조심하며 살아야 했던 그에게 요령 없는 첫 공사는 병원 가기 딱 좋은 순간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철거하시는 분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3시간 넘게 끙끙거리며 1/8를 뜯었던 것을 그분은 장비를 사용해서 천장과 모든 데코타일, 바닥 샌딩까지 거의 1시간 만에 끝내버렸다.


...!!!!


앞으로 철거는 무조건 사람을 부르겠다 다짐했다.




하얀 도화지처럼 깔끔해진 공간. 이 공간에 채워져 갈 것들을 생각하니 설렜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멋진 카페가 완성되었고, 이제 그걸 실현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하얀 도화지 같았던 공간에 한 단계 한 단계를 밟아갈수록... 상상 속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우리의 마음과는 점점 멀어지며 그저 제대로 기능할 수만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1. 철거

2. 수도, 설비

3. 전기

4. 목공

5. 페인트

6. 전기마무리

7. 바닥


이 모든 작업들이 마치 함수처럼 엮이고 엮여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걸, 첫 인테리어 공사에서 알 턱이 없으니 나중에는 물만 나오길, 전기가 작동되기만 하길, 페인트가 발라지기만 하길, 하는 그 마음으로 우리는 투박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기능'을 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자 그는 박람회와 카페쇼를 찾아다녔다. 큰돈이 들어가다 보니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매장을 찾아가서 사장님들께 여쭤보기도 하며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조금씩 쌓아놓은 정보를 토대로 로스터기와 슬레이어 머신을 좋은 조건으로 잘 구매했다.


기능이 있고

장비가 있었다.


그럼 카페가 완성되는 것인가?


아니,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었다.

기능만 존재하는 곳일 뿐.


가장 초창기. 여기저기 발품을 팔면서... '기능'을 하는 공간이 생겼다. 그 때 처음 만났던 모든 분들과 커요는 사진을 찍었고.




물론, 커피 로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커피를 주며 교류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커요는 임대받은 공간의 반을 나누어 로스터리 작업실, 그리고 나머지를 카페처럼 손님들이 앉을 수 있도록 마련했다. 로스터리 작업실이야 투박해도 괜찮지만, 손님들이 앉으려면... 적어도 의자와 테이블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그걸 살 돈이 없었다.


발품을 팔며 공간을 나누고,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긴 했지만 따뜻한 물을 받을 워터디스펜서도,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도 둘 수가 없었다.


"일단, 나 커피 볶으면서 로스팅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어느 정도 내가 적어도 맛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 커피 맛이 나올 때까지 우선 파트타임을 하면서 연습을 계속할게."


그렇게 커요는 파트타이머로 다른 카페에서 일하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해서 로스팅을 공부하며 연습을 했다. 수없이 콩을 사고 로스팅을 했고, 그렇게 망친 콩들은 다 버려지곤 했다. 그때 수학교사로 일하고 있던 나는 200만 원 되지 않는 적은 월급으로 가장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금액을 전부 지니엄의 생두와 인테리어에 집어넣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시작된 셈이다. 그와 동시에 신용카드 할부제도에 무한히 감사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달까. 뜨거운 물은 커피포트로 끓였고, 제빙기를 둘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여전히 커피콩을 계속 버리고 있는 그를 보며 슬슬 답답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까지 볶을 거야? 이 정도는 다른 카페보다 훨씬 맛이 좋은걸. 왜 이렇게 만족을 못해?"


나는 결국 폭발했다.


"맛이... 없어."


"아니 그게 그거지!! 이제 좀 판매 좀 해!!"


"어떻게 그래! 나는 내가 맛있다고 느껴야 제대로 돈 받고 팔 거야! 차라리 돈 안 받고 주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까지 할 건데?"


"나도 모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도 참 외로웠을 거다. 주위에 아무도 그의 생각에 공감해 주지 않았었으니까. 본인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스스로를 향한 불안감이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 갔다.


과연 언제까지 마음에 드는 원두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며칠에 한 번씩.

GSC라는 커피 생두회사를 찾아가 직접 콩을 보고 골랐다. 그 당시 만났던 너무 친절했던 민선 씨는 지니엄을 계속해서 응원해 주었고 다양한 산지의 생두들을 설명해 주었던.. 고마운 사람이다. 덕분에 커피 산지에 대한 이해를 차츰 늘려가기 시작했으니까.


브라질. 과테말라. 케냐. 코스타리카. 모든 나라의 콩들을 다 사서 로스팅을 하던 어느 날.



그는 한 나라의 콩을 볶고 마신 후 일하고 있던 나에게 급히 전화를 했다.


"여보...!!!!! 맛있어...!!!!!!"


일 끝나고 달려간 그날 밤.

우리는 한참 동안 커피를 마셨고 나는 그를 토닥여 주었다.


"고생했어..."




에티오피아의 콩가.

몇 달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맛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그의 신커피 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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