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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살MJ Nov 16. 2023

집에 자주 놀러 와라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말

대학교 3학년부터 자취를 시작하여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자취를 하고 있는 나.

오랜만에 집에 가면 아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가워하셨는데, 지금까지는 내가 일 때문에 바쁠까봐, 자꾸 오라고 하면 부담될까봐 단 한 번도 집에 오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으셨다. '너무 바쁘면 오지 마라, 왔다갔다 힘드니까 한가하면 놀러 와라.'라고 말하시지만, 통화를 하면 보고 싶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던 아빠였다.


2023년 8월

오랜만에 집에 갔다. 오랜만에 본 아빠는 입맛이 너무 없다고 하셨다. 음식이 안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며 그냥 조금 굶으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하시길래 그러신가보다, 했다. 


오랜만에 아빠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자고 하셨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마당에 고기 구워 먹을 준비를 하셨다. 입맛이 없다던 아빠가 온가족이 함께 모여 고기를 구워먹을 땐 그래도 곧잘 드셨다. '이 부위가 부드럽네.'하시면서 예전처럼 고기를 잘 드시는 모습에 자주 집에 놀러와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기를 다 먹고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옛날 노래를 틀어두고 마당에 풀어둔 강아지들 애교도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면서 온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잘 가지 않았던 나는, 그날의 시간이 너무나 좋아서 일주일인가, 이주일 만에 다시 본가를 찾았다. 아빠는 거의 열흘에서 이 주 정도 음식을 못 드셨다고 했다. 살도 10kg 가까이 빠지셨다. 그나마 내가 놀러가면 그때 마당에서 고기 먹는 게 다라고 하셨다. 10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고 나서도 집에서 밥을 워낙 잘 드셨고, 그래서 회복도 빨랐던 아빠의 모습과 너무나 상반되었다. 흡연으로 인해 심장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담배는 죽어도 끊지 않겠다던 아빠가,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든다며 흡연자인 사촌 오빠에게 남은 담배를 모두 주었다는 것이다. 온가족이 담배 끊으라고 아무리 보채도 담배를 끊지 않겠다고 끝끝내 고집을 피우던 때보다 더 불안해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빠가 사라지셨다. 엄마는 아빠가 없다며 우리를 깨웠다. 마당 뒤쪽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아빠를 찾는데 안 보인다는 것이다. 아빠 핸드폰은 집안에 있었고, 이상하다 생각한 우리는 계속 걱정을 했는데 차고를 보니 아빠 차가 없었다. 그러다 아빠 핸드폰으로 카드 사용 문자가 왔고 아빠가 차를 끌고 나갔다가 뭘 사오시나보다, 생각했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온 아빠는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며 고기 구워먹을 때 테이블이 작아서 우리 가족이 다 앉기 불편할 것 같다고 사왔다고 말하며 웃으셨다. 우리는 테이블이 정말 좋다고 대답했고 엄마는 걱정이 너무 앞선던 나머지 정색을 하며 말도 안 하고 나가면 어떡하냐, 밤에 운전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셨다. 내가 평생 봐온 아빠는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시며 불면이 없으셨는데 그 즈음 계속 잠이 안 온다고 하셨다. 그날은 잠을 한숨도 못 주무시다가 답답한 마음에 새벽에 차 타고 멀리 드라이브를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테이블을 사 오신 것이다. 


아빠는 마당에서 고기를 먹으면서 집에 자주 오라는 말을 하셨다. 그 전까지는 오기 힘드니까 오고 싶을 때만 오라고 하셨던 아빠였는데, 집에 자주 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집에 놀러올 때만큼은 아빠가 더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집에서만큼은 아무 스트레스 안 받고 재미있게 있다가 가라고, 오는 게 힘들면 아빠가 차비 줄테니까 자주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8월에 두 번 본가에 갔고, 8월 말에 아빠가 응급차에 실려 가셨고, 9월 초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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