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질환의 늪

12 ) 원인도 모르면 어떡하죠?

by 김 고운

오랜만에 만나는 안락한 집이건만

그 짧은 사이에 불면증이라도 생긴 모양인지 심장만 빨리 뛸 뿐 잠이 오질 않았다.

덕분에 하루 사이 더 진해진 다크서클을 달고 아침을 맞이했다.


잠을 자지 못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엄마의 눈 밑에도 다크서클이 진하게 생겼다.

우리는 물기 없는 감자 마냥 퍼석퍼석한 얼굴로 아빠 면회를 갔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한 문구가 생각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절대적인데 저게 뭔 헛소린가 싶겠지만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해 보자.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칼퇴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늘도 돕는지 서류도 착착 끝나서 할당량을 시간 안에 끝냈다. 너무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봤더니 퇴근하기 20분 전이다. 체감상 10분은 지나있는 것 같은데 막상 시계를 보면 1분이 지나있다. 마음만큼 빨리 가주지 않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발을 동동 구를 것이다.


반대로 중환자실에서 받은 20분이라는 시간은 어떨까.

중환자실 면회는 오전 단 20분. 환자의 감염 예방을 위해 하루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그 당시 하루를 꼬박 기다린 끝에 만나는 우리에게 2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빠도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우리만 오며 쏜살같이 가버려서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시간의 절대적과 상대적 의미에 대해 제대로 파고들면 끝이 없으니 그냥 예시를 들어주기 위한 설명이었다고 생각해 주시길)






주치의 선생님께서 면회가 끝나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큰 컴퓨터 화면에 빨간 피부를 가진 사람의 사진을 띄워놓았다. 주치의 선생님이 사진 속 인물이 우리 아빠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정도로 아빠는 단시간에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S 병원에서 이야기한 대로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 맞습니다. 다만 아버님의 경우에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보다 더 윗 단계인 독성표피괴사용해라는 질환입니다. 어떤 약을 드셨는지 전달해 달라고 했는데 보니까 병원 오기 전 3일 동안 약을 계속 바꿔 드셨더라고요. 거기다 한약도 드셨고..... 이 전부터 간 기능이 좋지 않다고 오메가 3까지 드셨던 상황이라 무엇으로 인해 생긴 부작용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주치의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 함께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 “

한숨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 많고 많은 설명 중에 그 말만 선명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지난 5일 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달았다. 내가 더 나은 판단을 했다면 이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면회 후에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길거리를 정처 없이 걸으며 울던 우리 모녀는 지방에 내려가 있는 동생에게 전화해 아빠의 소식을 전했다.


우리의 눈물 파티는 집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나는 모든 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그때 엄마는 똑같은 말만 하며 숨 넘어갈 것 같이 우는 내가 정신줄을 놓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엄마는 정신 차리라며 내 어깨를 흔들고 나를 다그쳤다.

가장 세게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멈출 줄 몰랐던 우리의 눈물은 동생이 오고 나서야 조금씩 잠겼다.

뭐 그것도 동생이 밥 먹다 울면서 다시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꿈속에서 아빠와 함께 했던 그 5일의 시간을 혼자 되풀이하곤 한다.





스티븐 존슨 증후군 | 질환백과 | 의료정보 | 건강정보 | 서울아산병원


요약 정보: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JS)과 독성 표피 괴사용해(TEN) - MSD 매뉴얼 - 일반인용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독성표피괴사용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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