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우리가 지켜줄 수 있는 것
다음날은 동생이 면회를 갔다. 살면서 우는 모습을 본 게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눈물이 없는 애인데 그날은 단 20분 만에 엄마만큼 붕어눈이 되어서 돌아왔었다.
(어제 밥 먹다 운건 논외로 치자)
면회가 끝나고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하에 아빠의 검사 결과를 들었다.
검사 결과는
- 간과 췌장은 다 망가져 손 쓰기가 어렵다.
- 다행히 신장이 간의 기능까지 담당하며 버텨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의문이다.
- 이미 소변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
- 39~40도가 넘는 고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폐가 공격을 당하고 있어 안 좋아지고 있다.
- 인공호흡기를 고민하고 있다.
긍정적이라고는 개미 똥구멍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결과지에 모두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가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면 의식이 없어지고, 함께 얼굴을 볼 기회가 사라지는 거니까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안 되냐는 질문을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그 말은 즉슨 심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술 및 생명유지를 하지 않겠다는 말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각서에 싸인을 해아 한다고 했다. 엄마는 또 눈물을 흘리며 몰랐다고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면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 핸드폰이 울렸다. 아빠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전화다. 아빠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나였기에 아빠의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내가 넘겨받았었다.
엄마가 있는데 굳이? 하시는 분들을 위한 tmi로 엄마는 전화만 받으면 울어서 대화가 어려웠다.
사실 나도 말만 하면 울었지만 그래도 그중 그나마 제정신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지인분들과의 전화 통화는 어렵지 않았다. 기도를 해 주신다는 분들도 계셨고 도움을 주신다는 분들도 계셨다. 마음만이라도 정말 감사했기에 나의 마무리 멘트는 항상 ‘감사합니다.”로 끝났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빠가 하던 일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전화의 행렬이란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세상에 동그라니 던져져 버린 사회 초년생처럼 버벅 버리며 전화를 받았더랬다.
”아! 팀장님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이야기해 주신 서류 언제 마무리될까요? “
”팀장님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그 일전에... “
블라블라블라
내가 듣고 있는 것이 정녕 한국어가 맞단 말인가. 어쩜 영어 듣기 평가보다 점수가 안 나올 것 같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히 듣다가
”안녕하세요. 김자헌 팀장님 딸입니다. “
로 말문을 열면 핸드폰 너머로 느껴지는 의아한 공기가 나의 귓가로 전해져 왔었다.
”지금 팀장님이 급작스럽게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서 제가 전화를 대신 받았습니다. 업무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드리고 싶어서요. 혹시 어떤 자료가 필요하실까요? “
아빠가 아프다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아빠의 마지막 신뢰다. 아빠가 할 수 없다면 가족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를 해주어야 했다. 우리에게는 크나큰 슬픔과 불행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아닌가. 그분들도 그들의 생업이 있기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집으로 돌아와 평소에는 서류라도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며 만졌던 아빠의 노트북을 죄다 열어보며 휘젓고 다녔다. 단시간에 나의 손길로 엉망이 된 노트북 배경화면에 흠칫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수첩 한 면을 빼곡히 채운 거래처들의 정보를 보며 밤새 노트북을 뒤적거렸다.
어쩐 일인지 밤을 새도 골골거리던 몸이 핫식스 한 박스는 마신 것 마냥 새벽에도 멀쩡했다.
불면증이 생긴 게 확실했다.
쥐 잡듯 노트북을 뒤져도 보이지 않는 서류들에 머리에서도 쥐가 날 때면 거실로 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경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사위가 깜깜한 서울 하늘 사이로 듬성듬성 빛이 나는 불빛들이 보였다.
”와~ 저기는 어디길래 이 새벽에 불이 켜져 있지? 야근인가? 나도 자발적 야근인데 “
혼자 키득거리며 우스갯소리를 하다가도
불빛이 별빛이라도 되는 마냥 하염없이 바라보며 열이 내려가게 해 주세요. 더 안 좋아지지만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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