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매일매일 눈물이 나는걸 어쩌죠
중환자실 입성 3일째. 월요일 오늘은 내가 아빠의 면화를 가는 날이다.
아빠의 면회 시간은 오전 단 하루뿐이라서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동생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면회를 가기로 했다.
아빠는 힘든데 매일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게 말인지 방구인지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중환자실에서 아무도 오지 않는 병실에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그 누가 의욕이 생기겠는가 생지옥이 따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가족을 만나는 그 상황에 우리 아빠 곁에만 아무도 없다면?
너무 싫다.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이므로 반박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오후 12시. 면회시간이 되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본 아바는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밥을 먹고 있었다.
심지어 미음이 아닌 야채죽으로!
나는 너무 놀라서 밥을 먹냐고 물어보았다.
”힘을 내야 하니까 밥을 조금 달라고 했어. “
잘했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그릇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을 먹었다. 무리를 한 게 아닌가 싶지만 아예 안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기에 마냥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면회 끝나고 다시 오겠습니다. “
간호사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시고 아빠가 엄마와 동생을 소식을 물어보았다.
엄마와 동생도 같이 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냥 우리가 이만큼 아빠를 걱정하고 있다고 느꼈으면 했다.
일은 어떻게 하고 이 시간에 면회를 왔냐는 아빠의 말에 일을 잠시 쉬기로 했다고 했다.
아빠는 면회 오지 않아도 되니 내 생활을 하라고 했다.
청개구리 마냥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며 딴소리를 했다.
칭칭 동여맨 하얀 붕대와 대비가 되어서 그런지 마지막을 보았을 때 보다 얼굴과 눈동자를 머스터드로 칠해놓은 것 마냥 샛노랬다. 말을 하는 입 안으로 얼핏 보이는 혓바닥도 노랗게 된 것이 보였다.
간이 망가져 황달이 심해진 것이었다.
아빠에게 조금 더 다가가려 걸음을 옮기는 내 다리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침대 밑을 보니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아빠. 여기 밑에 있는 건 뭐야?"
"밑에? 소변 주머니라고 했는데"
그럴 리가.
이렇게 새빨간 물체가 내가 아는 그 소변 주머니 일리가 없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 없이 침대 밑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빠의 손만 잡고 있는 그때 주치의 선생님이 잠시 방문하셨다.
”오늘 밥 드셨다면서요? 아주 잘하셨어요. 영양제를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먹는 것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요. 최대한 많이 드세요. “
주치의 선생님은 우리가 궁금해했던 문제들도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40도 가까이 오르는 열은 피부가 다 벗겨지기 전까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간 수치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주치의 선생님은 우울해있는 우리들에게
”아직 그럴 때 아니에요! 진짜 큰일 나게 생겼으면 저희가 연락할 테니까 지금은 그러지 맙시다! “라고 하셨다. 아빠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보호자가 울면 환자도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눈물이 나는 걸 어쩌겠는가.
그날도 중환자실에서 우리 두 부녀만 눈물의 20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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