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그리운 할머니

by 감성작가 미조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할머니는 집 앞 등나무 아래 평상에 나와 앉아 계셨다. 신장이 좋지 않아 노년기 내내 하루걸러 하루 병원에 다니셨고 약을 달고 사셨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께는 평상에서 동네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앉아계시는 그 시간이 너무도 평온하고 귀해 보였다. 종갓집에 시집 와 여덟 남매를 낳고 젊은 시절을 시집살이와 자식들 뒷바라지로 보내신 할머니,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이곳에서 논밭과 함께 머물며 세월을 드신 할머니, 손녀들이 잠 못 들어 뒤척일 때는 옛날이야기를 가만 가만히 들려주시던 할머니가 이 가을, 무척이나 그립다.

“미주야, 저어게 대호네 집에 홍시가 잘 익었다. 바알갛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마침 토요일 오후다. 할머니 말씀에 장대를 챙겨 홍시를 따러 가는 내게 할머니는 바구니를 챙겨 주신다. 이웃집 건너건너면 대호오빠네 집. 멀지 않아 달려가니 금방이다. 담장위로 올려다보니 저위에 할머니 말씀대로 바알간 홍시가 몇 개 달려있다. 가까이 와서 보니 나무가 꽤 크다. 주인 아주머니께 홍시를 따도 되겠냐고 여쭈어보고 허락을 받았다. 기분이 좋다. 어린 나에게는 긴 장대가 무거워서 몸이 휘청거릴 정도다. 기운을 내서 장대를 쭈욱 들어올린다. 긴 장대가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하다.
‘옳지. 거기,거기.’
장대의 모양은 대나무의 끝을 쪼개어 나뭇가지를 끼워 놓은 모습이다. 홍시가 달린 가지에 장대 끝의 갈라진 부분을 끼워 넣는다. 이제 장대를 옆으로 비틀어 나뭇가지를 꺾어 내리면 성공이다. 그런데 팔이 아파서 쉽지가 않다. 홍시가 ‘나 좀 어서 따가요’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꼭 나를 약 올리는 것 같다. 안간힘을 써 장대를 살짝 비틀었다.
‘탁!’ 가지 부러지는 소리.
조심,조심히. 이제 가만히 장대를 내리기만 하면 된다. 가지를 내리다 홍시를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가지 끝에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장대를 점점 짧게 잡는다. 자, 이제 다 됐다. 홍시 따기 성공! 할머니께 가져다 드릴 생각에 신이난다. ‘다른 식구들것도 따가서 저녁이 되면 같이 먹어야지.’하는 생각에 감나무를 향해 장대를 다시 들이민다. ‘탁탁!’소리와 함께 홍시 따기 두 번 성공. 그리고 한번은 ‘철퍼덕.’ 지붕위에서 홍시가 으깨지는 소리.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홍시를 향해 장대를 들이민다.
할머니가 챙겨주신 바구니에 홍시가 수북히 담겨있다. 오늘의 수확에 뿌듯해하며 할머니께 달려 간다.
“할머니, 할머니! 이거 드세요.”
기쁨에 찬 내 목소리. 그렇게 말씀드리고 제일 잘 익은 홍시를 조심히 골라 드린다.
“차암 달다.”
할머니의 짧은 한마디. 그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할머니 옆에 앉아 말씀드렸다.
“할머니,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또 따드릴게요. 그러니까 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되요.”
할머니는 나의 말 끝에 대답대신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신다.

할머니의 잔잔하고 넉넉하던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이듬 해 늦여름,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우리 마을에서 한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야하는 도시의 큰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를 주말이 아니면 찾아뵐 수 없었다. 평일에는 고모와 부모님이 전해주시는 할머니의 소식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많이 편찮으신 할머니 곁에는 늘 친지 분들이 계셨지만 그것이 내가 아니라서 안타까웠다.
십 수년을 이 고향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 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 할머니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맛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할머니가 생각나고 평상에 앉아 있으면 평상바닥을 어루만지며 ‘여기는 할머니 자리인데..’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빨리 건강이 전처럼 회복이 되었으면, 회복이 되어도 약은 계속 드셔야 했지만 그래도 집에 오실 수 있었으면.’ 그 해 늦여름은 매일 같이 그 생각으로 보냈다. 그렇게 좋은 소식 없이 늦여름이 지나갔다. 입원 기간이 오래 될수록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 되어 싱그럽던 연둣빛 감은 홍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 홍시를 드시면 할머니가 나아지실까?’하는 생각에 ‘홍시야, 빨리 익어라, 빨리 익어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하루, 이틀, 사흘... 몇 일이나 지났을까. 주말을 앞두고 어제 미리 따 놓은 홍시를 챙겨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출발한지 십 분이 채 되지 않아 아빠의 휴대폰이 울렸다. 고모의 전화였다. 아빠는 말없이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이내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곧 엄마도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나는 고모와 아빠가 나눈 이야기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손으로 홍시를 감싸고 고개를 떨구었다. 한참을 그렇게...

올 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되었고 우리 마을 곳곳의 감나무에는 홍시가 달려있다. 평상에 앉아 가만히 감나무를 바라본다. 나는 이렇게 커서 이제 장대를 높이, 그리고 오래 들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저 홍시를 따서 누구에게 드려야 하는지를 알지 못 해 이렇게 감나무를 바라보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