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예술, 그리고 요즘 생각
어떤 시선에선 글을 쓴다는 건, 비명과 신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 섞인 신호’를 번역하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글’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겠지만 어느 정도는 통감하는 일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기호’와 ‘신호’로 어쩌면 존재하지 않은 목소리를 존재하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아직 뭔가 두루뭉술한 와닿음이지만, 저보다 더 현명한 여러분에게는 크게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촉각이 저보다는 훨씬 민감할 테니까요.
글을 쓰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은, 역시 솔직함의 신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이란 건, 역시 읽혀야 하는 존재이다 보니까. 정확한 신호로 자신의 의도대로 전달하기.
거짓된 신호로 띄워 보낸 글은 한 명을 오래 속이는 것도, 모두를 짧게 속이는 것도 가능하지만, 공개된, 그리고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글은 결코 ‘모두를 오랫동안’ 속일 수 없다. 아마 그게 드러나기 전에 사라지게 되는 게 그런 글들의 섭리더라고요.
그런 걸 알기 전인 한때는 잘 꾸며진 자신이 참 중요했던 시절도 있었더랍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어떤 모습을 봐주길 바라고, 최악의 모습들은 꽁꽁 싸매 숨겨두고.
뭐… 이제는 압니다. 뭐라도 있는 것처럼 굴어봤자, 실체는 보잘것없다는 거. 일단은 이걸 인정하는 게 모든 것의 시작인 거겠죠. 이런 것부터가 바로 솔직함의 시작. 페르소나에 생긴 작은 균열. 참 재밌게도 페르소나 나는 건 도자기와 물성이 참 닮아서, 그 작은 균열하나로도 순식간에 쩌적. 하고 갈라지곤 하고 말입니다.
결국 요즘 책을 다시 손에 꼭 쥐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긴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쓸 가면이 없다고 해야 할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얼굴 채로 누군가에게 잡아 뜯겼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러고 나니 텅 빈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더라고요. 언제나처럼 스스로의 생각으로 채워보려고 했습니다만, 길을 잃은 기분이 들고. 내가 원하지 않은 방식. 아니면 거짓 신호들로 더 이상 내 언어의 재고와 유통기한은 완전히 끝나버려서. 여러모로 새로운 이정표가 필요했고, 책은 하나의 이정표로서 먼저 겪은 사람의, 아니면 겪음을 가정한 사유들의 위로와 대안들을 읽는 일이니까.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적인 위대한 무언가는 ‘병든 것‘으로 나와야 한다. 는 믿음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썩은 것을 비료 삼아, 아주 멋진 것이 피어나는 거라고. 무언가를 새로이 보는 일은 삐딱한, 세상이 요구하는 시선을 부정하고 뒤틀고 꿰뚫어서 그 너머를 보는 일이라고.
얼마나 귀여운 생각입니까? 아무튼 그런 생각들이 ‘부정형(아니면 미정?)의 자신’을 얼마나… 초라하고, 정신적으로 비루하게 내던져 놨는지 생각하면, 그 단내가 풀풀 나는 썩은 물을 맛있는 술인양 홀짝거렸는지. 그래서 또 그런 어딘가 ‘실제로 아프거나, 더 나아가 실제보다 더 아픈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속과 겉이 다른 ‘나와 같은 존재’들을 좋아했던 건지 싶기도 하고요. 조금 정 떨어질 이야길 수도 있습니다만 말입니다.
뭐 그런 생각들의 변화들로, 이제야 무언가 건설적인 일을 하고, 지속가능한 무언가 들을, 하고 싶은 일과 되고 싶은 것을.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어도 해야 할 일을, 나를 위한 일과 내 주변을 위한 일을 고민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표정 좋아 보인다는 말을 해주는 분들. 맞아요. 제대로 봐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저의 요즘 분위기와 시그널들은 생기가 참 넘치는 것 같거든요.
꽤나 홀가분한 바람을 요즘은 텅 빈 몸의 구멍들 쉬-이하고 스쳐 지나가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꽤나, 가볍고, 건조하고, 시원합니다.
어떤 글들이 읽힐까 라는 생각이 참 여러 갈래로 생각이 나뉜 것 같습니다. 왠지 이번 글을 다시 복기해보니 참을 수 없는 두루뭉술함이, 정리되지 않은 뒤죽박죽함이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 써놓은 글이 간신히 거짓말이 아닌 것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과거의 내가 꽤 좋은 반면교사라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만 해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갈 일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미워할 것도 아니고, 그냥 좀 ‘구리고 귀여웠어‘ 정도로 생각하려고요. 뭐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봤자 자기만 아픈 일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