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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싶은 초능력

아픈 손가락의 상서.

by 후기록


요즘은 건강하십니까.


편지말을 쓸 때 즈음엔, 항상 첫머리가 가장 어려운 기분이 들어, 약간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이 서신을 시작합니다.


요즘 저는 글쓰기를 주일마다 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가지고 싶은 초능력‘에 대해 쓰는 시간이길래 ’초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순간이동, 염력, 정신 조종…. 여러 가지 영웅과 빌런의 모습이 지나갑니다.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고 하던가요.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 그런 거창한 능력은 사실 다 쓸모없는 듯한 기분이 들고 말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역시 거창함과는 거리가 먼 듯 한 기분도 들고 말입니다.


당신은 만약 초능력이 생기면 어떤 것을 가지고 싶습니까? 여타 여느 때처럼 당신의 가장 큰 걱정인 돈 문제를 해결할 무언가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본래의 천성대로, 나와 내 누이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자유라는 당신의 기질을 살려 어디로든 이동하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비행이라던지, 순간이동 같은 능력을 원하실까요. 나는 여태껏 당신의 슬하에 있으면서도 당신의 욕망을 몰라서, 이렇게 추측할 뿐입니다. 역시 부끄럽게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기골이 장대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를, 4킬로 남짓한 아이가 까탈스러운 기질로 태어나선 하루가 멀다 하게 울어, 안은 채 내려놓을 수 없는 순간을 말입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달래며 그 생명의 무게라는 것이 당신의 얇은 팔에 복리를 달아선, 아이를 내려놓고 나서야 한꺼번에 몰려오는 순간을 말입니다. 가난한 탓에 아기 침대 같은 건 생각도 못 하고, 아이의 머리가 납작해지진 않을까 하여 당신의 잠을 쪼개 이리저리 그 아이를 돌려 뉘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가 조금 자랐을 때, 일어서고 걷고 이젠 뛰기 시작했을 때의 시간을 기억하십니까. 어딜 나갔다 온다는 것은 어딜 다쳐서 온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을 때, 당신은 그리 힘도 센 장사도 아니면서 식구라는 입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장사에 몸을 던져서 얼마나 마음 졸였을지, 아이는 이제야 이해합니다. 당신이 먹고살기 위해 골랐던 국밥 장사를 위해 끓이고 있던 곰솥에 아이가 다리 한 면 전체를 데었을 때는 어떠셨습니까. 아이는 기억합니다. 당신의 눈물을, 그 눈물을 훔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저를 맡겨 병원에 보내고 할 일을 하는 당신을 책임감을.


하지만 그 책임감을 이해하기엔 아이는 아직 너무 철이 없어 우리가 꽤 오랜 시간 서로를 반목하며 지낸 기간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의 내리사랑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아이가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을 꾸역꾸역 삼킨 당신의 일들을 아이는 기억합니다. 자아가 몸보다 더 빨리 자라 버려 비집다 못해 깨진 영혼의 조각들에, 그걸 품어 내는 당신은 얼마나 베이셨습니까. 그렇게 베이시면서도 왜 저에게 비난의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까. 누가 봐도 멍든 손가락인 저를 왜 그렇게 서투른 ‘사랑’이란 것으로 그저 꼭 쥐고만 계셨습니까.


부모라는 것은 그런 존재인 것입니까.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 정도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까.


여전히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선, 무뚝뚝한 아들에게 먼저’ 오늘도 고생했어 ‘라는 말을 건네십니까. 그 아들은 ‘응 엄마도 고생했어’라는 말로 짧게 대답하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탓에 발레리나의 발만큼이나 핏줄이 투명한 푸름으로 울퉁불퉁해진 그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시간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지, 당신의 그 초인적인 책임감이란 것이 내게 앞으로 얼마나 허용이 될지 말입니다.


이젠 자아가 몸보다 덜 자란 듯한 겉만 어른이 된 아이를, 어떻게 당신은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있으십니까.


저를 키운 것이 당신의 그 불가해한 ’ 사랑’이라는 것에 닿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받아 들어야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일어나곤 하고.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기적’이라는 말로 겨우 압축해서 표현하곤 하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는 초능력이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 기적 같은 일‘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에 닿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가지고 싶은 초능력이 무엇인지 그 편린을 조금 깨달은 듯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유지를 이어놓은 그 ’ 사랑‘이란 것 말입니다. 당신에게 배운 그 초인적인 보호라는 것 말입니다.


언젠가 당신을 보고 배운 것들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언젠가 ’ 기적 같은 사랑’을, 당신의 초능력을 이어받는 날을 상상합니다.


제가 가지고 싶은 건 그 정도면 충분한 듯합니다. 당신이 이미 충분히 저에게 과분해서, 덕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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