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이 당기는 계절이다. 위스키 같은 술과 탄산수가 어울려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낸다. 최근 들어 식전주나 여름철 음료로 대세몰이를 했지만 가을에도 인기는 여전하다. 가라아게나 돈카츠 같은 요리에는 환상의 궁합이다. 가벼운 바디감이 있어 카망베르 치즈의 느끼한 풍미도 싹 가셔준다. 파스타나 마르게리타 피자 같은 이탈리안 요리에도 제 격이다.
트렌디한 칵테일이 유행이긴 하지만 술의 지존은 역시 위스키나 보드카다. 보드카는 그 자체로는 무미, 무취에 가까운 술이다.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려서 취향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시대에 따라 그 위상과 이미지도 진화해 왔다. 냉전 시대에는 서구와 동구 간의 상징적 대립 구도에서 동유럽 문화를 대표하는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글로벌화된 럭셔리 아이템으로서의 이미지를 얻었다.
보드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문화와도 깊이 결합했다. 영화, 음악, 예술과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광고나 대중 예술 속에서 보드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대중의 변화하는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재탄생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비주얼 중심의 최장기 캠페인
앱솔루트 보드카 브랜드는 광고사에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장기 캠페인을 펼쳐 왔다. 상징적인 병 모양을 중심으로 한 비유적 비주얼이 핵심이었다. 특히 절제된 디자인과 통일성 있는 메시지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묘하게 진화해 왔다. 2000년대 이후, 보드카는 디지털 미디어와 소비자 참여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광고 캠페인으로 전환했다. 기존의 상징적 병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용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이나, 특정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의 창의적인 보드카 병 이미지를 공유하는 캠페인도 있었다. 단순한 브랜드의 메시지 전달을 넘어 소비자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보드카 브랜드와 교감하게 했다. 다양한 문화, 인종, 그리고 사회적 배경을 포용하는 메시지를 담아 광고를 제작했다. 특히 예술,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협업하면서 단순한 술병 이상의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디지털 시대, 진화하는 브랜드
최근 몇 년 동안, 미니멀리즘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광고 캠페인도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인 병 모양을 유지하되, 불필요한 장식을 줄이고 간결한 디자인을 통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경향이다. 지속 가능한 패키지나 제조 과정을 홍보하는 등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도 하고 있다. 광고 캠페인이 오랜 시간 동안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일관성과 변화의 조화이다. 상징적인 병 모양과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춘 메시지와 기술을 도입해 왔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브랜드의 성공 비결이다.
2000년대 이후의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는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면서 정체성을 꾸준히 발전시켜 오고 있다. 최근 광고 캠페인에서 등장하는 "Book", "Magic", "Idol", "Canvas", "Beatles"와 같은 부제들은 아주 상징적이고 감각적이다. 타이틀에 담긴 의미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부각한다. 특정한 주제나 감성을 중심으로 문화적, 예술적 요소와 연결 짓고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눈속임-은유
은유는 광고의 수사학 중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기법이지만, 우리는 그 전형을 앱솔루트 보드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스웨덴의 빈 앤 스프리트(Vin & Sprit)사에 의해 고급 보드카의 불모지인 미국을 상대로 독특한 이미지를 심어나가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 전초기지로 캐릴런 임포터스(Carillon Importers)가 수입업자로 선정되게 된다.
캐릴런사는 TBWA와 광고대행 계약을 체결하고 1980년에 첫 광고인 "Absolut Perfection"을 선보였다. Absolut 보드카 병을 "완벽"으로 지칭하며, 간결한 슬로건을 통해 독특한 모양을 강조했다. 이후 Absolut는 병 모양을 활용한 다양한 시리즈를 전개하며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앱솔루트 보드카 캠페인은 현재까지 무려 45년간 어어져 오고 있다.
앱솔루트 보드카가 단순한 상업광고를 넘어서서 예술작품의 경지로 승화하게 된 계기로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Andy Warhol)과의 만남을 꼽을 수 있다. 1985년 무렵 유력한 경쟁자였던 수입보드카 스톨리치나야의 추격이 시들해 지자 캐릴런사의 사장인 미셀 루스(Michel Roux)는 앱솔루트 브랜드의 보수성을 탈피해서 혁신적인 실험을 시도하게 된다. 그 구상의 핵심은 광고아트에 패션감각을 최대한 불어넣는 일이었다.
앱솔루트는 본격적인 아트 브랜드로 거듭나게 되고 이때부터 앱솔루트 보드카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메세나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 후 키이스 해어링(Keith Haring) 등의 유명 예술가뿐만 아니라 무명의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지원함으로써, 앱솔루트 보드카는 르네상스를 후원했던 메디치가처럼 현대 팝아트의 재정적 후원자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Time>지와 순수 미술지 <Art in America>등의 잡지에 시리즈 형식의 광고캠페인을 게재해 왔다. 이 캠페인을 통해 다양한 슬로고(slogo;slogan과 logo의 합성어) 디자인과 은유적 표현을 재치 있게 사용함으로써 광고아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보드카 광고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ABSOLUT라는 슬로고는 함축하는 의미가 심장하다. ‘absolute’라는 낱말에서 e자가 빠져 있음은 어지간한 눈썰미만 있다면 금세 알아차릴 일이다. 여기에 이 광고의 계략이 숨어 있다. 우선 틀린 철자가 눈길을 끌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진 글자를 집어넣어 자신이 알고 있는 ABSOLUTE라는 단어를 완성하게 함으로써 광고해석에 동참하게 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E자는 광고의 독자를 낚아채는 미끼로 작용한 셈이다.
절대적 유혹-절대적 보드카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의 콘셉트는 스웨덴 산의 보드카가 세계 최고의 보드카임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드카 하면 러시아를 떠올리는 미국인에게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고도의 상징을 통해 제품의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제품과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 광고전략이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동원된 표현전략이 바로 비주얼적 은유이다.
신발과 병모양과 가족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까? 이런 궁금증이 이 광고에 독자들이 참여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평이한 직유법 또는 카피를 통한 친절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면 메시지의 이해도는 높은 반면 잔상효과는 높지 않고 따라서 장기기억을 형성하는 데 큰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이 광고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일부러 에둘러 표현하는 수법을 통해 수용자의 상상, 공상, 추론을 유도해 내고 광고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서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해석된다.
ABSOLUT CITRON은 은유적 표현 중에서 제유(synecdoche)의 전형적 형태이다. 제유는 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표상의 기능을 한다. 이때 레몬의 단면은 잘리지 않은 레몬의 제유이다. ABSOLUT MANHATTAN은 뉴욕에 있는 맨해튼 섬의 일부를 보여 줌으로써 맨해튼 또는 뉴욕시를 제유하고 있다.
환유(metonymy)는 제유와 비슷한 기호체이지만 대체의 방식이 조금 다르다. 즉 표상의 대상체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기능상의 상징적 연쇄관계로 구성된다. ABSOLUT PARIS는 파리의 어느 지하철 입구를 상징하는 술병모양의 구조물 위쪽에 METRO라는 언어적 표지를 배치하고 있다. 즉 표상하고 있는 실체를 언어나 도상 같은 상징에 의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은유(metaphor)는 에코가 진정한 은유라고 부르는 수사법이다. ABSOLUT EVIDENCE는 넓은 여백 오른쪽 위에 엄지 손가락의 지문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커다란 글씨로 인쇄되어 있는 ‘ABSOLUT EVIDENCE’라는 언어 기호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드카 모양의 술병이 눈에 뜨인다. 손도장 무늬와 술병 모양을 등식으로 놓아서 ‘손도장이 약속의 보증이 되듯이 보드카의 품질 보증이 된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성탄절 축하행사로 음악 예배를 보는 미국의 관습을 상기시키는 ABSOLUT HARMONY는 은유의 수사학 중에서 유추(analogy)에 해당한다. 성가대원들로 이루어진 성탄 나무는 ‘노래하는 성탄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의례의 은유를 그대로 본떠서 유추화시킨 것이 이 작품이다. 즉 ‘교회에 노래하는 성탄 나무가 있듯이, 거리에는 노래하는 술병 나무가 있다’라는 관계에서 유추의 공식을 대입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코 변하지 않되 늘 변하는 캠페인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의 특징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결코 변하지 않되 늘 변하는 (Never changing but Always changing) 캠페인’이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캠페인을 흐름에 따라 정리하면 크게 10개의 테마로 묶을 수 있지만 콘셉트와 표현의 기본 축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일관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 4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은 또 다른 표현원칙은 앱솔루트의 병이 주인공이 된다는 것과, ‘Absolut’로 시작되는 두 단어가 카피의 전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에는 미주알고주알 말 많은 카피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가 담겨 있는 듯하다.
앱솔투트 보드카 광고는 이처럼 상징적 은유로 그 존재를 광고사에 우뚝 세웠지만 또 다른 미덕이 있다. 그것은 철저히 제품을 스타로 만드는 아트워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도시, 풍물, 사람, 문화재, 패션 등이 작품의 표현오브제로 등장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제품의 드라마가 숨 쉬고 있다.